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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팀 버튼) - 이건 영화가 아니라 서커스입니다 본문

영화 감상 이야기/21세기 영화 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팀 버튼) - 이건 영화가 아니라 서커스입니다

오늘의박쥐 2019. 5. 2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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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얼뜨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팀 버튼 감독에게 맡긴 걸까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저명한 이야기입니다. 루이스 캐럴의 장편 동화. 앨리스라는 여자 아이가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쫓아갑니다. 이상한 나라에 떨어집니다. 작아지는 약을 먹고, 커지는 약을 먹고. 정신 나간 모자 장수와 5월 토끼를 만나고. 사라지는 고양이를 만나고. 하트 여왕이 홍학과 고슴도치로 크리켓을 합니다. 앨리스가 대들자 여왕이 화를 내고 병사들이 와글와글. 그 순간 언니가 앨리스를 깨웁니다. 모든 것은 꿈이었지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의 성대한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상한 세계'라는 이름 그대로, 이 동화 안에는 정상적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앨리스는 이런 어지러운 세계에서 도망치려고 애쓰지만, 나가는 길을 찾으려고 할 수록 더욱 이상한 세계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앨리스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언니가 꿈에서 깨워줍니다. 빈틈없는 구성입니다. 그야말로 '어린 여자아이의 신비한 꿈' 자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화를 다 읽고 진짜로 앨리스의 꿈을 엿본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 신비스런 꿈이 디즈니의 손에 의해서 아름다운 영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1951년, 우리 모두가 사랑한 애니메이션으로 말입니다. 원작이 그려낸 '꿈의 세계'를 움직이는 그림으로 그려냈습니다. 아직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어린이들까지 신비한 상상의 세계로 인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노란 머리 소녀 앨리스와 시계를 든 토끼는 신비한 환상 세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런 업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소재들을 짜집기한 엉성한 모험담에 지나지 않습니다.

원작의 앨리스는 평범한 소녀였습니다. 호기심에 토끼를 쫓아왔다가 이상한 나라로 떨어지고, 이곳의 정신나간 작자들을 피해다니며 집으로 돌아가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나라에서 어린이가 빠져나올 수 있을 리 없었고, 결국 한계에 달했을 때 꿈에서 깨고 언니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앨리스는 호기심 많은 소녀고, 이상한 사람들에게서 도망치려고 하는 불쌍한 아이며, 잠깐 악몽을 꿨다가 언니의 품 속에서 안도하는 사랑스런 존재였습니다. 앨리스는 어린이의 마음을 상징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팀 버튼이 만든 앨리스는 사랑스런 구석이 없습니다. 애가 아니라 어른이어서가 아닙니다.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 앨리스도 토끼를 보고 따라가기는 합니다. 그런데 왜 그러는 걸까요? 이 앨리스는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입니다. 옷 입고 서 있는 토끼를 보면, '와, 신기하다!' 하면서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헛것을 봤다고 생각해야 정상인 나이입니다. 더구나 앨리스가 토끼를 목격한 장소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정원이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앨리스만 토끼를 발견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리고 앨리스가 뭘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원작의 앨리스는 처음에는 호기심에 이것저것 건드려 보고, 흰 토끼를 찾아보려고도 하다가, 결국에는 이상한 사람들에게 지쳐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팀 버튼 버전의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 대해 아무런 호기심도 안 가집니다. '어차피 이건 다 꿈이겠지.'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괴상하게 생긴 토끼, 쌍둥이, 벌레 따위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거대한 괴물이 자신을 공격해도 무관심합니다. 그런데 왠지 몰라도 갑자기 모자 장수를 구하려고 하거나 칼을 갖고 재버워키를 처단하려고 하며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아까까지 모든 것에 무관심하던 애가 갑자기 이렇게 적극적인 이유가 뭘까요? 이해가 가신 분 계시나요?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를 꾸며내는 것은 성공했습니다. 동화 속 세계라고 하기에는 너무 스산한 것이 아쉽기는 합니다. 하지만 팀 버튼의 뛰어난 색채 감각과 촬영 기술은 원작의 해괴한 등장인물들을 빼어난 실사 캐릭터로 바꿔냈습니다. 그 기괴한 세계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108분을 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팀 버튼은 '이상한 나라'를 그렸을 뿐, 그 속에서 방황하는 '앨리스'는 그려내지 못했습니다. 원작의 우스꽝스러운 세계를 독자들이 재밌게 읽은 것은 '어린아이 앨리스'의 눈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아직 어린 앨리스는 눈앞에 벌어지는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판별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앨리스의 눈을 통해 보는 '이상한 세계'가 꿈인지 현실인지 독자들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앨리스와 똑같은 당혹감을 느끼며 책을 읽어야 했지요. 그리고 앨리스가 꿈에서 깨는 순간에 독자들도 안도하는 동시에 '아, 역시 꿈이었구나.'라고 이야기를 납득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팀 버튼 버전 앨리스는 어른입니다. 처음부터 '이상한 나라'가 말이 안 되는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관객들도 말하는 토끼, 트위들 디와 트위들 덤, 모자 장수 따위를 보면서 '이게 꿈이야, 현실이야?'라는 의문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주인공인 앨리스가 '다 가짜야.'라고 말해버리니까요.

그것도 나름의 전략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으로 본 세계인 원작을 '어른의 눈'으로 보면서 재해석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것이 팀 버튼의 의도였겠지요?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화는 '어른의 눈'으로 본 세계를 그려내지 못했습니다.

앨리스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갑자기 '이상한 나라'가 꿈이 아닌 현실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런 심경의 변화를 겪을 계기가 영화 속에 전혀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관객들은 영화가 꿈인지 현실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빨갛고 하얀 괴상한 것들이 그럴싸하게 움직이니까 볼 뿐입니다. 이래서는 영화가 아니라 서커스나 다름없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조차 꿈에서 깨는 건지 그냥 날아서 정원으로 돌아온 건지 어정쩡하게 연출합니다. 원작에서 앨리스가 깨어날 때 느꼈던 안도감 따위는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이미 붉은 여왕을 쓰러트리고 모두가 평화를 되찾았으니까. 그리고 앨리스가 저쪽에서 이틀인가 사흘은 보냈을 텐데, 정원에 모인 사람들은 앨리스가 잠깐 사라졌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더욱더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갑니다. 그런데 앨리스는 대체 이게 뭔지 관객에게 설명해주는 대신, 갑자기 약혼을 파탄내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설교를 던지더니, 내면에 감춰진 무역의 재능(?)을 발아하며 중국으로 떠납니다. 중국으로 무역을 떠나는 것이 지금까지 했던 모험과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이 영화는 어린이를 위한 영화도 아니고, 어른을 위한 영화도 아닙니다. '지금 심심하니까 뭐든지간에 휘황찬란한 쇼를 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한 영화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얼마든지 추천합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도저히 권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원작의 열렬한 팬이시라면 웬만하면 안 볼 것을 권합니다. 그런 분들은 애니메이션 버전을 한 번 더 감상하는 것이 나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