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의 영화 이야기

<몬스터> (패티 젠킨스) - 연쇄살인범에게 공감해야 볼 수 있는 영화 본문

영화 감상 이야기/21세기 영화 이야기

<몬스터> (패티 젠킨스) - 연쇄살인범에게 공감해야 볼 수 있는 영화

오늘의박쥐 2019. 5. 16. 01:39

<몬스터>는 <원더우먼>으로 유명한 감독 패티 젠킨스의 영화 데뷔작입니다. 실존했던 여성 연쇄살인범 아일린 워노스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릴 때 강간을 겪고 미성년일 때부터 몸을 팔기 시작하는 인생을 보내던 여성 아일린이 우연히 레즈비언 바에서 만난 여성 셀비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셀비와 함께 살기 위해서 돈을 벌려다가 결국 살인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범죄의 늪에 빠지는 스토리입니다.

아일린은 매우 거칠고 난폭한 여성입니다. 이 여성을 묘사하기 위해서 미인 배우 샤를리즈 테론이 살을 찌우고 피부를 태우는 고난을 거쳤습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웬만한 남자들도 때려눕힐 것 같은 우락부락한 몸집, 아무에게나 욕설을 퍼붓고 거침없이 물건을 때려부수는 성질머리. 아무리 피카레스크 영화라는 걸 감안해도 상당히 이질적인 주인공입니다. 제목 그대로 '몬스터' 같은 여자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아일린을 진짜 '괴물'로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시작부터 나오는 아일린의 독백은 그녀가 어릴 때 아름다움을 꿈꾸는 순수한 소녀였음을 설명합니다. 또한 사랑과 희망만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 이상주의자였다는 것도 작중에서 설명됩니다. 그러나 그녀의 타고난 외형, 주위의 환경은 그녀의 이상과 달랐습니다. 그녀는 못 생긴 얼굴을 하고 거리에서 남자를 꼬시는 창녀로서 살아갑니다.

그 삶은 셀비와 만나면서 변합니다. 자신에게 없는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고, 자신을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셀리. 아일린은 금세 그녀에게 사랑에 빠집니다. 거의 강제로 그녀를 데리고 꿈의 생활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나한테 맡겨라. 너를 행복하게 해주겠다.' 등등 틴에이지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열렬한 구애를 합니다. 마음 속에 억눌러 놓았던 옛날의 꿈이 셀비와 만나면서 다시 부활한 겁니다. 자신의 이상을 셀비에게 겹쳐본 것이죠.

그러나 삶은 아일린의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습니다. 결국 돈이 없으니 매춘을 계속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살인을 저지릅니다. 한 번 저지르고 나자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거침 없이 연쇄살인마로 돌변하고, 수법이 악랄해집니다. 옛날에 강간당했던 경험을 떠돌리며 살인을 정당화하기까지 합니다. 아일린의 범행을 눈치챈 셀비는 그녀에게서 조금씩 멀어집니다. 결국 경찰에게 꼬리가 잡히게 되자 셀비는 아일린을 버리고 떠나고, 결국에는 법정에서 아일린의 범행을 증언하기에 이릅니다.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이것이 영화의 주제입니다. 별로 알아내기 어려운 주제가 아닙니다. 상영 시간 내내 대놓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일린이 '어릴 때는 미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라고 말한 다음에 못생기게 자란 얼굴을 보여줍니다. '희망만 있으면 해낼 수 있다.'라고 말한 다음에 아무것도 못 해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에 '사랑은 영원하다고 한다.' 어쩌고 방백하다가 갑자기 카메라를 정면으로 주시하며 'F*ck'을 중얼거립니다. 이쯤 되면 '제4의 벽 넘기' 수준입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 대놓고 관객들에게 '세상은 썩었어, 이 F*ck들아!'라고 소리치는 거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저도 그런 생각에 동감합니다. 그러나 <몬스터>가 그것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영화라고는 못하겠습니다. 영화의 플롯은 매우 탄탄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문제는 영화의 화법입니다. 영화가 관객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2시간 짜리 사회학 강의를 듣는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아일린 애들러의 삶을 그려낸 영화'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일린 애들러의 삶을 통해 알 수 있는 이상주의 비판 특강'에 가까워요.

그런 주제에 공감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영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몬스터>는 매우 불쾌한 영화입니다. 길거리에서 행패를 부리고, 평범하게 금연을 요구한 바텐더에게 욕을 퍼붓고, 여자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자기를 따라줄 것을 강요하는 아일린의 행동은 도저히 좋게 봐줄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영화 마지막에는 관객들과 시선을 맞추며 욕을 퍼붓고요. 영화 안에서 아일린이 셀비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장면은 진짜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몬스터>는 그런 아일린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보게 하려고 합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