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의 영화 이야기

<바바둑> - 마음의 병을 치유하려면, 자신이 환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본문

영화 감상 이야기/21세기 영화 이야기

<바바둑> - 마음의 병을 치유하려면, 자신이 환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의박쥐 2019. 6. 17. 11:26

아버지 없이 살아가는 모자 가정이 주인공인 공포 영화입니다. 아들을 낳던 날에 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는 혼자서 꿋꿋이 아들을 키워나가지만, 남편의 죽음을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에 아들이 '바바둑'이란 동화책을 읽은 뒤로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집니다. 아들이 자꾸 바바둑이 나타난다고 소리치고, 자신의 눈에도 이상한 현상들이 발생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어머니가 아들을 학대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알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며 바바둑의 위협은 더욱 커져갑니다.

바바둑은 스케일이 작은 공포 영화입니다. 고대의 사악한 악령도, 사람들을 무차별 살육하는 살인마도 나오지 않습니다. 피해자는 단 두 명 뿐입니다. 그나마 그렇게 큰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닙니다. 집안을 때려부수지도 않고, 칼 들고 쫓아오지도 않습니다. 그저 둘이 정신이 나가게 만들 뿐입니다.

근데 사실 바바둑이 정신이 나가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아들이 바바둑이 있다고 소리치면 어머니가 바바둑은 없다고 싸우는 것이 전부입니다. 바바둑이 뭔가 장난을 치기는 하는데, 환각을 보여주거나 버렸던 동화책이 돌아오는 것 정도가 전부입니다. 후반에 가면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기는 하지만 중반까지는 전혀 아닙니다. 런데도 바바둑은 그저 존재만으로 모자 가정을 붕괴시킵니다.

<바바둑>은 평온한 가정에 악마가 찾아와서 평화를 깨트리는 내용이 아닙니다. <바바둑>의 모자 가정은 이미 망가져 있었고, 그저 망가지지 않은 척을 하면서 필사적으로 살아온 것뿐입니다. 바바둑은 망가진 관계를 표면으로 드러내기 위한 계기일 뿐입니다. 아들이 '바바둑'을 외칠 수록 어머니는 자신들이 망가진 가정으로 비칠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바바둑을 필사적으로 부정하며 아들을 야단칩니다. 그럴수록 아들과 관계는 망가지고 가정은 붕괴합니다.

'바바둑'이라는 말에 별 의미는 없습니다. 아들이 외치는 것은 의미없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비명입니다.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어머니의 말과 달리, 아들은 자기 집안이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들은 그것이 '바바둑'의 탓이라면서 무서워합니다.

'바바둑'이 진짜 있는지 없는지, 모든 것이 '바바둑' 탓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집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머니가 바바둑을 물리칠 수 없는 이유는 바바둑이 강력한 존재여서가 아닙니다. 어머니가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상인 것처럼 굴면 마치 문제가 없어질 것처럼 구는 어머니의 태도. 그것은 몸속에 암이 자라나고 있는데 겉으로 건강한 척 굴면 암이 없어질 거라고 믿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바바둑>은 병이 낫기 위해서는 건강한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환자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다룬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경우는 몸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