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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 어벤져스의 유지를 이은 소년, 자신만의 영웅상을 찾아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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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 어벤져스의 유지를 이은 소년, 자신만의 영웅상을 찾아내다

오늘의박쥐 2019. 7. 4. 22:36

스파이더맨이 이제 어벤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파이더맨을 어벤져로 만들어준 아이언맨은 죽고 없는 상태입니다. 그밖에도 대부분의 어벤져들이 사라진 현재 스파이더맨은 너무 큰 책임에 부담을 느낍니다. 그 와중에 새로운 악당들이 나타나고, 스파이더맨은 새로운 슈퍼히어로 '미스테리오'와 협력하여 싸웁니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피터 파커는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하려다가 실패하며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습니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나선 것이 아니라 남에게 떠맡겨진 일입니다. 자연재해에 가까운 파괴를 일으키는 괴물들 앞에서 스파이더맨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중반부까지 활약은 거의 미스테리오가 다 하고, 스파이더맨은 거드는 것만으로 벅찰 지경입니다.

지난 <스파이더맨: 홈커밍> 리뷰에서 저는 'MCU의 스파이더맨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특징은 이번에도 활용됩니다. 스파이더맨은 자기보다 훨씬 강력한 괴물들과 맞서는 미스테리오를 보면서, 이곳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아이언맨을 대신할 사람은 잔뜩 있고, 따라서 새로운 아이언맨은 아이언맨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피터를 자기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닉 퓨리와 해피 호건도 피터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피터는 이제 <스파이더맨: 홈커밍> 시절의 철부지가 아닙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우주 전쟁을 경험하고 온 피터는 이제 아이언맨과 어벤져스가 싸우던 싸움터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옛날이라면 주위의 인정을 받고 방방 뛰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부담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결국 스파이더맨은 본래의 소박한 영웅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수였습니다. 스파이더맨이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포기하는 바람에 더욱 커다란 사태가 발생하고 맙니다.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실수에 좌절하며, 자신은 차세대 아이언맨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피터에게 해피 호건은 누구도 또다른 아이언맨이 될 수 없고, 누구도 토니와 비견할 수 없다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토니 역시 실수 투성이인 사람이었고 후회가 많았지만, 피터를 선택한 것은 후회하지 않았다고도 말해줍니다. 그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피터는 아이언맨의 유지를 이으면서도 자신만의 능력을 활용하며 싸우게 됩니다. 지난 <스파이더맨: 홈커밍> 리뷰에서 피터는 아직 '스파이더맨이 되고 싶어 했던 소년'일 뿐이라고 했는데, 이 순간에 드디어 진정한 '스파이더맨'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홈커밍>보다 훨씬 발전한 액션은 '스파이더맨'이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그려줍니다. 피터 파커는 거미에게 물린 초능력자인 동시에, 뛰어난 과학 영재이며, 아이언맨을 비롯해서 수많은 어벤져들의 유지를 잇는 자이기도 합니다. 피터는 자신의 스파이더 센스를 각성하고, 자신의 발명품과 과학 지식을 이용해 악당의 무기들을 무력화시키며, 토니의 기술력으로 만든 슈트를 입고 캡틴 아메리카를 보고 배운 전법으로 싸웁니다. 이 마지막 싸움에서 기존 스파이더맨 영화에 없던 MCU 만의 스파이더맨의 개성이 확고해집니다. 그것은 홀로 고독하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어벤져들의 유산을 이어받으며 싸우는 새로운 소년 히어로라는 것입니다.

아쉬운 점으로는 영화의 스토리가 혼란스럽다는 겁니다. 유럽 여행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보니까 배경이 일정하지 않고 자꾸 변화하는데, 이 탓에 영화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관객들이 소화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등장인물이 상당히 많아서 혼란이 가중됩니다. 피터의 친구들, 미스테리오, 해피 호건, 닉 퓨리 일행, 악당들까지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 탓에 130분의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의 출연 시간은 적습니다. 이 탓에 캐릭터들에게 몰입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특히 해피 호건은 스토리 전개에 가장 큰 전환을 가져오는 인물인데도 중반까지 거의 등장이 없다가 갑자기 비중이 늘어나서 당혹스럽습니다. <홈커밍>에 비해서 '슈퍼히어로 영화'의 정체성은 확고해졌지만, 서사 면에서는 오히려 약해졌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