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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홈커밍> - '스파이더맨이 되려는 소년'이 매력적, 그러나 진짜 '스파이더맨'은 안 나온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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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홈커밍> - '스파이더맨이 되려는 소년'이 매력적, 그러나 진짜 '스파이더맨'은 안 나온다

오늘의박쥐 2019. 5. 30. 13:17

헐리우드는 도대체 스파이더맨을 몇 명이나 만들어야 만족하는 걸까요? 조만간 스파이더맨 영화만으로 DVD방을 차릴 것 같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스파이더맨이 스크린에 실렸던 탓에,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그들과 달라보이려고 엄청 애를 써야 했습니다. 일단 스파이더맨이 어떤 인물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궁금한 사람은 샘 레이미나 마크 웹이 만든 영화를 보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전 스파이더맨 영화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습니다. 다른 영화들에서는 스파이더맨이 유일한 슈퍼히어로였습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스파이더맨은 수많은 슈퍼히어로들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심지어 나이도 적고 경력도 짧으며, 가장 강한 것도 아닙니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스파이더맨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어쩌고저쩌고 설교를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스파이더맨보다 더 강하고, 더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슈퍼히어로들이 널린 세상이니까요.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괜한 짓 하지 말고 작은 일이나 해라.'라는 충고나 듣게 됩니다.

이 영화는 '특별하지 않은 스파이더맨'이 '특별한 스파이더맨'이 되려고 분발하는 모험담입니다. 바로 '어벤져스' 말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스파이더맨이 '어벤져스'에 들어가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이전에 나온, 그리고 이후에 나올 어떤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가질 수 없는 특징입니다. 그 영화들에는 어벤져스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 꿈이 허황된 과대망상도 아닙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스파이더맨은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빼앗았고, 팔콘을 날아차기로 날려버리기도 했고, 윈터 솔져의 기계 팔을 한 손으로 막았으며, 거대화한 앤트맨을 제압했습니다. 자신이 어벤져스와 동급이라고 느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어벤져스의 리더인 아이언맨은 스파이더맨을 어벤져로 인정해주지 않았고, 그래서 스파이더맨은 아이언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에 사로잡힙니다. 이제까지 이웃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정도의 선행만 하던 스파이더맨은 '한 탕'을 노리게 됩니다. 그러나 의욕만 앞선 스파이더맨은 계속해서 실수를 저지르고, 더 큰 위기를 부르고 맙니다. 아이언맨에게 인정받으려고 한 짓이 오히려 실망만 안겨주고 맙니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어른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소년 스파이더맨이 일진일보를 거듭하며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스파이더맨은 의욕으로 충만해 있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어린 탓에 지나치게 막 나가고, 진짜로 자신의 '한계'를 깨닫습니다. 영화의 전반부는 한계에 부딪힐 때까지 좌충우돌하는 과정으로 재미를 주고, 후반부는 한계에 부딪힌 스파이더맨이 그럼에도 슈퍼히어로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으로 감동을 줍니다.

이렇게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영웅을 동경하는 초능력 소년의 성장기'라는 정체성을 갖췄습니다. 반면 '스파이더맨' 영화로서는 매력이 부족합니다. 스파이더맨을 스파이더맨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마천루 사이를 거미줄로 타넘고 벽을 기어오르는 화려한 액션입니다. 샘 레이미와 마크 웹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스파이더맨 특유의 액션을 살려냈습니다. 이 영화의 스파이더맨은 소소하게 거미줄 탄환만 뿅뿅 쏴댈 뿐입니다. 마천루는 구경도 하기 힘듭니다.

스파이더맨의 미숙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아이언맨은 스파이더맨이 자신에게 맡기지 않았다고 타박을 주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스파이더맨이 아이언맨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세상 어떤 사람이 '알았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찌그러져 있어.'라고 말하면 굽신거리며 말을 듣겠습니까? 물론 대기업의 CEO이자 어벤져스의 리더를 겸하는 아이언맨이 스파이더맨에게 그 이상 신경을 써 주는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유가 어쨌든 간에 아이언맨이 스파이더맨의 반항심을 돋우는 태도를 취한 것도 사실입니다. 영화는 그런 점을 전혀 짚어주지 않고 넘어갑니다.

벌처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벌처가 아무리 생계 문제로 몰려 있었다고 해도, 그가 하는 행동은 분명한 범죄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스파이더맨은 벌처에게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합니다. 스파이더맨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이언맨이나 벌처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아직 스스로의 철학이 없는 아이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정의를 갖고 싸우는 슈퍼히어로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아직 스파이더맨이 되지 못한 소년'의 매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진짜 '스파이더맨'은 안 나옵니다. 부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는 완성된 스파이더맨의 매력을 묘사해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