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의 영화 이야기

<트루먼 쇼> - 스크린은 '진짜 삶'을 상영할 수 없다. 본문

영화 감상 이야기/20세기 영화 이야기

<트루먼 쇼> - 스크린은 '진짜 삶'을 상영할 수 없다.

오늘의박쥐 2019. 5. 22. 00:12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나타났다. 그런데 눈앞에서 사람들에게 끌려가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아버지 사이를 가로막는다?! 그리고 갑자기 라디오에서 나의 사생활이 생중계되고 있다! 분명히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족들과 친구는 허튼 생각하지 말라는 조언만 하는데! 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차이가 무엇이죠? 다들 답할 수 있지요? 영화는 허구고 다큐멘터리는 실제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가짜입니다'라고 외치는 영화는 없습니다. 모든 영화는 허구지만, 진실을 가장한 허구입니다. 진짜 같은 거짓말이지요.

관객들은 진실 같은 이야기를 원합니다. <트루먼 쇼>는 그런 욕구를 탐하는 갈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한 사람의 진짜 인생을 쇼로 만들어 방송합니다. 그는 진짜이지만 주위의 환경은 가짜입니다. 그는 자신이 쇼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알고 있는 사람은 주변인들 뿐입니다. 배우와 소품으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트루먼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의 인생은 연기가 아니지만, 그의 삶은 조작입니다.

사실 좀 말이 안 되는 설정이긴 합니다. TV 쇼 하나를 위해서 저런 장대한 사기극을 만드는 것은 터무니없이 수지타산이 안 맞는 짓입니다. 그리고 24시간 내내 트루먼의 인생을 TV에 틀어준다고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트루먼이 하루종일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을 리는 없습니다. 트루먼이 화장실에 가고 침대에 누워 잠자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내용이 대체 뭐가 재미있단 말인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루먼 쇼>는 관객들의 마음에 충격을 안겨줍니다. 작중의 시청자들은 트루먼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감독의 말이나 각본가의 대본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트루먼의 '진짜 삶'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트루먼 쇼'는 트루먼의 '진짜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연출된 쇼입니다. 속임수입니다.

트루먼의 아버지의 등장은 '트루면 쇼'가 가짜라는 것을 폭로합니다. 트루먼은 아버지 없는 삶을 줄곧 살아왔지만, 그것은 제작진의 속임수였습니다. 아버지는 그저 배우였고, 쇼에서 퇴장당해 쫓겨난 것이었습니다. 감독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트루먼의 아버지가 살아 돌아왔다는 각본을 지어냅니다. 그러나 트루먼의 아버지는 '살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쇼에 복귀한 겁니다. '트루먼 쇼'와 현실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아무리 진짜처럼 만들더라도, 쇼는 허구입니다. 그래서 트루먼은 쇼에서 도망칩니다. 바다를 건너고 벽을 넘어서,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시청자들은 트루먼의 '진짜 삶'을 지켜보게 됩니다. 트루먼이 파도를 넘고 물에 빠지면서 사경을 헤매는 광경에 몰두합니다. 그것이 '진짜 삶'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고, 앞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는 암흑의 세계 말입니다. 그런 예측불가능한 점이 '진짜 삶'의 매력입니다. 연출된 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트루먼은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남기며 떠납니다. 작중의 시청자들도, 현실의 관객들도, 트루먼이 바깥 세상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는 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트루먼만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자신의 인생은 자기만이 알 수 있는 것이며, 영화관이나 TV에서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트루먼 쇼>는 바깥으로 나간 뒤의 트루먼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