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의 영화 이야기

<스카페이스>(브라이언 드 팔마) - 정점에 올라갈 수는 있어도, 정점에 앉을 수는 없던 범죄자 본문

영화 감상 이야기/20세기 영화 이야기

<스카페이스>(브라이언 드 팔마) - 정점에 올라갈 수는 있어도, 정점에 앉을 수는 없던 범죄자

오늘의박쥐 2019. 6. 15. 11:08

쿠바에서 미국으로 송환된 범죄자 토니 몬타나가 암흑가의 보스가 되고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현대판 <맥베스>라 할 수 있는, 전형적인 욕망의 비극입니다. 그런 만큼 이야기 자체는 식상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폭력성, 그리고 인생의 허무함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당시의 시대상을 뛰어난 촬영술과 풍부한 각본을 통해 담아내고 있습니다.

영화의 매력은 온전히 '토니 몬타나'라는 캐릭터에서 나옵니다. 헝클어진 머리, 짐승 같은 눈, 굵은 턱, 사나운 입. 척 보기에도 양아치처럼 생긴 인물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상대를 똑바로 노려보고,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영민하고 눈치가 빨라 기회를 잘 잡습니다. 알 파치노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과, 이런 냉혹한 인간이 활약할 수 있던 당시의 암흑가를 실감나게 묘사한 연출력에 힘입어, 토니 몬타나는 눈앞에 있는 것 같은 생경함을 과시합니다.

토니 몬타나는 한 마리 들개 같은 사나이입니다. 그는 무일푼이자 전과자로 외국의 수용소에 떨어졌습니다. 이보다 더 빈털털이도 세상에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결코 비굴해지지 않고, 돈과 여자를 거느리며 왕처럼 살려는 욕망을 감추지 않습니다. 들개가 적을 보면 이빨을 들이대며 덤비듯이, 토니도 칼과 총을 들고 사냥감을 물어뜯습니다. 그는 결코 도망치지도, 굽신거리지도 않습니다. 기회를 잡으면 바로 물고, 타협 없이 싸워서 더 큰 것을 얻어갑니다. 그 와중에 위기를 겪고 죽을 뻔했던 적도 많습니다. 그러나 겁먹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향해 더욱 큰 분노를 드러내며 이빨을 들이댑니다. 위험을 무릎쓰고 성장하는 토니를 보면서, 관객들은 그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계속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들개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사냥터 뿐입니다. 그토록 바라던 보스 자리를 손에 넣자마자 토니는 파멸하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빼앗기만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 태도는 무언가를 얻는데는 최고였지만, 얻은 것을 지키는 데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토니는 결국 마지막까지 들개처럼 살다가 파멸을 맞이합니다.

<스카페이스>는 한 범죄자의 인생을 찬양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줄 뿐입니다. 타협 없이 힘으로 원하는 것을 갖는 것. 그것은 당신을 최고로 만들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고의 자리를 지켜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토니 몬타나는 사람들의 숨겨진 욕망을 자기 인생으로 체현하는 동시에, 그 욕망이 가진 현실적인 한계를 비춰주는 씁쓸함을 안겨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