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의 영화 이야기

<업> - 못다 이룬 꿈을 지닌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본문

영화 감상 이야기/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야기

<업> - 못다 이룬 꿈을 지닌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오늘의박쥐 2019. 5. 17. 20:15

'우리 집이 하늘로 날아가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 보신 적 있나요? <오즈의 마법사>의 애독자라면 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집이 토네이도에 휘말려 마법의 세계로 날아가는 상상이요. 그럼 집을 마치 기구나 비행선처럼 조종하며 날아가는 모험은 상상해 보셨나요? 이 영화에서는 진짜 합니다. 집에 풍선을 잔뜩 매달아서 남아메리카로 떠나는 여행을요.

이 영화는 할아버지가 주인공입니다. 할아버지는 어릴 적에 모험을 꿈꾸었고, 같은 꿈을 가진 아내와 모험을 계획하기도 했지만, 생활고 때문에 이루지 못했지요. 그래서 아내가 죽고 나서 혼자 남은 지금에야 모험을 떠납니다. 아내를 폭포로 데려다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다른 영화에는 없고 <업>에만 있는 매력은 바로, 집이 풍선에 매달려 하늘을 나는 광경의 영상미에 있습니다. <업>의 비행 장면은 다른 영화들이 보여주는 비행과 차별되는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보통 하늘을 나는 것은 새, 비행기, 헬리콥터, 로켓 등입니다. 이것들은 매우 빠르고 불안정합니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듯이 날아야 합니다. 그러나 <업>에 나오는 집은 그렇지 않습니다. 2층 목조 주택이 빨주노초파남보 색깔의 풍선에 매달려 날아다니는 모습은 매우 화려하고 몽환적이며, 마치 동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그리고 매우 안정적입니다. 본래 땅에 붙어있던 주택이, 땅에 있던 모습 그대로 떠올라 날고 있으니까요.

그 집은 할아버지가 아내와 평생을 같이 하며 추억을 쌓아온 집입니다. 할아버지에게 자기 분신이나 다름없지요. 집이 날다가 폭풍우에 휘말리기도 하고, 산이나 건물에 부딪힐 뻔하기도 하는 등, 여러 고난을 겪는데도, 어쩐지 '모험'이라는 느낌이 안 나는 이유는 그것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여행을 떠나면서 집과 계속 함께 합니다. 집 안에서 아내의 사진을 어루만지고 아내의 물건들을 소중이 감싸는 모습은 매우 평안해 보입니다. 그래서 마치 모험이 아니라 꿈을 꾸는 것 같은 환상적인 기분이 들게 되지요.

그러나 할아버지의 '집'에 불청객이 찾아옵니다. 꼬마 러셀과 말하는 강아지 더그, 거대한 새 케빈입니다. 집이 날아오를 때 실수로 따라온 케빈은 할아버지의 집에 들어와서 같이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남미의 산 위에서 더그와 케빈을 만납니다. 할아버지는 이들을 떨쳐내려고 애쓰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이렇게 한 명과 두 마리 불청객이 등장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는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풍선이 떨어지면서 할아버지도 집 밖으로 나와서 다니게 됩니다. 집을 밧줄로 묶어서 늙은 몸으로 끌고 다니는 광경은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결국 케빈이 악당에게 잡혀가게 놔두고, 더그를 버려두고, 러셀이 자신을 떠나는 것도 무시하고, 할아버지는 마침내 폭포에 도착합니다. 마침내 목표를 이룬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클라이맥스라는 느낌은 전혀 없고 그저 싸늘할 분위기만 흐릅니다. 아내와 같이 가겠다는 약속을 위해 왔지만, 실제로 아내 분이 같이 온 것이 아니니까요. 할아버지의 꿈은 끝난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이제 꿈에서 벗어나서 다시 현실로 돌아갑니다. 더그와 함께 케빈과 러셀을 구하러 가서 악당과 싸웁니다. 그 싸움은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집은 폭포로 떨어져 할아버지를 영원히 떠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악당의 비행선을 타고 러셀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옵니다.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 영화지만, 아이들을 위한 영화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한참 꿈을 꾸어야 할 아이들에게는 그다지 맘에 닿는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그 반면에 어른들에게는 무척 와닿는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못다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현실에 집중하지 못하는 어른들 말입니다. 그런 어른들은 풍선에 매달린 집을 타고 날아가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꿈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이루는 쾌감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고, 할아버지가 여정을 끝내는 순간에는 같이 현실을 다시 마주할 각오를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