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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죄를 지으면 벌이 따라올까?

오늘의박쥐 2018. 12. 24. 22:49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문학 <죄와 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네? 그건 <안나 카레리나> 아니냐고요? 난 모릅니다. <죄와 벌>이 짱이에요.

<죄와 벌>은 대학생 라스콜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뒤, 수많은 고민을 겪다가 창부 소냐의 설득을 받고 자수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써놓으면 굉장히 심플한 소설 같지만 실상은 전혀 아닙니다. 라스콜니코프의 심리는 세계 문학사 사상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미쳐있기 때문에 좀처럼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마지막에 자수한 것이 죄책감 때문인지 단순한 자기보신인지, 아니면 가족을 위해서인지 말하기 매우 힘듭니다. 정확히 왜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 계기가 무엇인지도 확실치 않고요.

하지만 어차피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소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런 시시콜콜한 부분에 있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살인을 한 다음 자수한다는 무척이나 심플한 스토리를 잘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완전히 미친 것 같지만, 그가 벌인 짓은 사실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살면서 ‘저 재수 없는 새X 죽여버리고 싶다.’라고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라스콜리니코프의 생각도 별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재수 없는 인간 한 명을 보고 족친 것뿐이에요. 다들 속으로는 생각하지만 실제로 하지 않는 것을 실제로 한 것뿐이지요.

그럼 재수 없는 X끼를 죽여버렸으니 이제 속이 시원할까요? 개뿔. 곧장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서 방황만 하고 삽니다.

이 소설이 흔해빠진 스릴러 소설과 급을 달리하는 이유는 , 사실 라스콜니코프가 자수해야 할 절박한 사정이 없단 겁니다. 상당히 엉성한 계획이었고 중간에 여러 실수도 있었는도 불구하고, 엉뚱한 사람이 혐의를 뒤집어쓰는 바람에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버립니다.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잘 살아갈 수 있었지요.

그러나 라스콜니코프는 결국 자수합니다. 어째서? 거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습니다만, 결국은 그냥 ‘속이 시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죽여놓고 그냥 평범하게 살려고 하니까 속이 시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소냐에게 털어놓고 맙니다. 소냐는 자수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말했고, 결국 그 말을 따라 경찰서로 향하고요.

제목만 보면 마치 ‘죄를 지으면 벌이 돌아온다’라는 신상필벌을 이야기하는 소설 같지만, 실상은 반대입니다. 라스콜니코프가 죄를 지었지만 벌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스스로 벌을 받으러 가고 말았죠.

결국 인간은 죄를 지으면 벌을 안 받고는 못 사는 생물이란 겁니다. (깡패나 마피아들이요? 걔들은 자기가 죄를 짓는다고 생각을 못하는 거죠.) 일탈의 욕망에 시달리는 갑갑한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