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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비록 데미안은 얼마 나오지 않아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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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비록 데미안은 얼마 나오지 않아도...

오늘의박쥐 2018. 12. 24. 18:42

<데미안>은 아마 제 인생을 바꾼 유일한 소설일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가치관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앞으로 그 이상의 충격은 받지 못할 겁니다.

<데미안>은 괴롭힘을 당하던 소년 싱클레어가 신비하고 어른스런 소년 데미안을 만나 삶이 점차 변하는 과정을 다룬 소설입니다.

데미안의 파격적인 성격과 사상은 제가 말로 해봤자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직접 읽으세요. 대신 이 글에서는 다른 말을 하겠습니다.

<데미안>에는 사실 데미안이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초반에 한두 챕터 나오다 말고, 그 다음은 싱클레어가 혼자서 오랜 방황을 하다가 혼자 성장하는 내용만 나옵니다. 그 와중에 데미안하고는 딱 한 번 편지만 나눕니다. 그 유명한 ‘새는 알을 깨기 위해 몸부림친다’ 말입니다. 그러다가 책이 끝나갈 때 쯤에야 겨우 싱클레어와 만나더니, 곧 전쟁이 나서 영원한 이별을 겪게 됩니다.

이 소설의 초반에는 데미안이란 신비한 소년의 매력에 빠져 읽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질리기 마련이라고, 만약 데미안이 소설 내내 등장하면서 싱클레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식의 소설이었다면 우리는 읽다가 금방 질렸을 겁니다. 이 소설을 계속 읽게 만드는 원동력은 바로 데미안의 부재입니다. 데미안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다시 나올 때까지 그를 그리워하며 소설을 읽습니다.

데미안은 우리와 너무 다른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성경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교사와 학교의 필요성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데미안은 워낙 의젓하고 논리정연하게 말하기 때문에 단순히 허튼소리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데미안에 대해 우리는 더욱 알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느낄 즈음부터 데미안은 등장이 끊기고 맙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흔적은 싱클레어에게 강하게 남고, 그는 그 작은 흔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조금씩 변화를 겪으며 데미안과는 다른 또다른 성숙한 인간으로 바뀌어 갑니다. 그리고 데미안과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그와 대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릅니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데미안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싱클레어의 눈에 비친 데미안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싱클레어의 일생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데미안이란 한 명의 인간이 잠깐의 만남만으로도 사람을 얼마나 바꿔 놓는지, 그 영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싱클레어의 인생에 남긴 데미안의 흔적은, 데미안 개인에 대한 묘사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말이 좀 복잡해졌는데 이해가 가셨을까요? <데미안>은 무척 난해한 소설이라서 간결하게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직접 읽어 보신다면 무슨 뜻인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인생을 바꿀 정도의 강렬한 만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