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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은 왜 좋은 걸까?

오늘의박쥐 2019. 12. 14. 22:14

나의 소년기는 <해리 포터><반지의 제왕>으로 시작되었다. 나만이 아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소년소녀들이 함께 했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나니아 연대기><얼음과 불의 노래><어스시 연대기>를 비롯해서 수많은 판타지 소설들이 함께 하고 있다.

판타지는 허구다. 물론 소설은 원래 허구이다. 그러나 다른 소설은 적어도 이런 이야기가 현실에 있을 수도 있다.’라는 가정을 깔고 시작한다. 판타지 소설은 아니다. 현실에 이런 이야기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다들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

어째서일까? 현실에 없는 것을 추구해서 읽는 것일까? 그것이 판타지의 존재 의의일까?

판타지 소설은 현실에 지친 사람들이 도피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하면 나름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너무 진부한 설명인 것 같다. 더 마음에 와 닿는 설명은 없는 걸까.

<해리 포터>를 닳고 닳게 읽었던 이유가 뭘까? 그것은 <해리 포터>세계를 더욱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는 마법사의 세계에 산다. 그 세계에서는 마법으로 짐을 싸고, 순간이동으로 이동하고, 사진과 초상화가 살아 움직이며, 어린이들도 마법으로 싸울 수 있다. 우리하고는 전혀 다른 신비로운 세상이다.

그럼 그 세상을 어째서 알고 싶었을까? 해리 포터는 학생이다. <해리 포터>의 배경은 마법 학교다. 그러나 그곳은 내가 다녔던 학교하고는 전혀 달랐다. 지루한 국어나 수학 따위는 배우지 않았다. 맛도 없고 매일 똑같은 급식이 나오지도 않았다. 그곳은 매일 같이 재미있는 수업을 배우고, 매일 맛있고 새로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내가 원하는 진짜 학교가 나와 있었다. 나는 진짜 학교보다 <해리 포터> 속에 나오는 호그와트 마법 학교를 더욱 좋아했다. 나는 소설책을 통해서 호그와트에 다니고 있던 것이다. 그런 기분을 내고 있었다. 소설을 자세히 읽을수록, 소설에 깊게 빠져들수록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인생이 따분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재미를 위해서 남의 인생에 관심을 가진다. 자기하고는 다른 삶에 대해 알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소설과 수필이 돈을 받고 팔린다. 남들과 다른 별난 삶에 대해 쓴 책일수록 잘 팔린다. 그래서 다른 누구하고도 다른 삶을 담은, 판타지 소설은 가장 잘 팔리는 것이다. 특히 따분하기 짝이 없는 학교에 갇혀 사는 아이들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될수록 해리 포터를 읽지 않게 된다. 일이 바빠서라는 것은 핑계다. 그저 다른 오락거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고 오락실에 가고 유튜브를 본다. 어른이 되면서 점차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동화는 더 이상 찾지 않게 된다.

하지만 어른 중에도 판타지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다. <해리 포터>가 특이한 경우다. 보통 판타지 소설은 어른들에게 더 많이 팔린다. 어른들도 인생에 지루함을 느낀다. 그것을 달래기 위해서 일탈을 저지른다. 그러나 어린이와 달리 어른은 너무 심한 일탈을 저지를 수 없다. 그래서 어른들은 소설 속에서 대신 일탈을 찾는다. 어린이를 위한 판타지보다 더욱 과격한 일탈을 저지르는 소설을 찾는다. <반지의 제왕><얼음과 불의 노래> 같은 소설에는 살인, 전쟁, 탐욕이 끊이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 세상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판타지 속에서 찾는 것이다.

요즘은 <해리 포터><반지의 제왕> 같은 저력을 가진 판타지 소설이 나오지 않는다. 다들 상상력이 빈곤해진 걸까?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써내려갈 재능을 갖춘 사람은 더 이상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