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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 풍차 장면은 어째서 유명할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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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 풍차 장면은 어째서 유명할까

오늘의박쥐 2019. 11. 15. 17:59

'돈키호테'라면 풍차가 떠오른다. 그것을 거인이라 착각하고 말을 달려 돌격하는 장면 말이다. <돈키호테>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더라도 알 것이다. 그만큼 <돈키호테>라는 책을 대표하는 장면인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읽어보면 몇 줄 되지 않는다. 묘사도 짧다. 소설 안에서 그렇게 중요한 장면도 아니다. 한 번 나오고 잊힌다. 그걸 겪고 돈키호테가 어떻게 바뀌지도 않는다. 그 대목을 안 읽고 넘어가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문제 없다. 이 사소한 구절이 일천 페이지가 넘는 책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니 희한한 일이다. 돈키호테의 수많은 기행 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기행이기 때문일까?

비슷한 장면은 몇 번이나 나온다.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는 것만큼 심각한 착각은 없지만, 양 떼를 군대로 착각하고 돌격하거나, 극단이나 순례자들을 악당으로 착각하고 돌격하기도 한다. 항상 이런 식이다. 어딘가에 자신이 해치워야 할 악당이 있다고 믿고는 돌격한다. 늙은 말 한 마리에 올라, 창 한 자루를 쥐고서.

왜 그렇게 달려들까? 왜 그렇게 험한 꼴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릴까? 그쯤 혼쭐이 났으면 그만두고 돌아갈 법도 한데. 그러나 돈키호테는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은 기사의 업이라고 주장하며 더욱 의욕을 불태운다. 그 무엇도 그의 의지를 꺾지 못한다.

그런데 돈키호테가 한 번은 진짜 맹수를 상대로 싸운 적이 있는 걸 아는가? 그는 사자를 상대로 싸운 적이 있다. 근사한 상황은 아니었다. 국왕에게 바치기 위해 우리에 실려가는 것을 보고는, 별안간 자신이 상대해야 할 적수라며 우리에서 풀어준 것이다. 그의 충실한 시종 산초 판사를 비롯하여 모든 이가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창으로 사자 주인을 협박하여 우리를 열게 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정말 초조했다. 사자라니. 양 떼나 극단하고는 다르지 않은가? 이번엔 착각이 아니다. 진짜 맹수다. 진짜로 사람을 물어 죽일 수 있는. 지금까지는 단순한 사고로 끝났지만, 사자를 상대로 그렇게 끝날 수 있단 말인가? 아직 수백 쪽이 남았으니 돈키호테가 죽을 리는 없는데도, 나는 그가 사자의 날카로운 이빨에 절명하는 광경을 보게 될까 두려웠다.

싸움은 어떻게 됐을까? 맥없이 끝났다. 사자는 공격하지 않았다. 돈키호테는 창을 들고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으며,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걸 본 사자는 멀뚱히 있다가 우리로 돌아갔다. 돈키호테는 승리를 선언했다.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끝나고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맹수는 배가 정말 고프지 않다면, 덩치 큰 동물을 함부로 공격하지 않는다. 사자는 배가 부른 상태였고, 돈키호테는 특별히 맛있는 사냥감으로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갑옷을 입고 창을 든 노인이 사자에게 어떻게 보였을지 상상해 보라. 아마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리 안에 있어도 충분히 배 부른데 굳이 정체도 모를 동물을 건드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사자는 돈키호테를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던 것이다.

사자만이 아니다. 돈키호테의 모험은 전부 그랬다. 거인인 줄 알았던 것은 풍차였다. 악당인 줄 알고 덤빈 것은 행인이거나 양 떼였다. 그는 자기한테 적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없었다. 있을 리가 없잖은가? 모험 소설 속의 세계가 아니니까.

돈키호테는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기사가 되고 싶어했다. 이 세상의 악을 몰아내고 정의를 바로잡고자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그는 정의 대신에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만 남겼다.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돌격한 미치광이 이야기를.

돈키호테는 실패했다. 그는 죽을 때가 되서야 자신이 한 짓이 엉터리인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후회 속에서 죽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폐만 끼친 것을 사죄하며 눈을 감았다.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돈키호테가 바란 모험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미치광이가 말 타고 돌격해봤자 무슨 성공을 거둘 수 있겠는가? 그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자명했다. 돈키호테만 모르고 있었다. 딱 한 명, 그의 충실한 종 산초 판사만이 그의 말을 믿었지만, 그나마도 몇 번 고생하고 나더니 안 믿게 된다. 중간부터 산초는 돈키호테의 기행을 말리는 역할로 바뀌게 된다. 풍차를 향해 돌격해봤자 다치기만 하니까 그만두라고 하는 역할 말이다.

그러나 소용없다. 아무도 돈키호테를 막을 수 없다. 그 스스로 풍차에 머리를 박고, 말에서 굴러떨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산초 판사는 물론이고 누구도 돈키호테를 도와줄 수 없다.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는 그때까지 구경꾼이 되어 돈키호테의 우스꽝스러운 모험을 보고 웃어댈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