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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의 영화 이야기
<모노노케 히메> - 이 영화의 주인공이 '산'인 이유 본문
"꺼져."
여주인공 '산'이 남주인공 '아시타카'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다. 여주인공의 첫 대사로는 영화사에 손꼽힐 만큼 쌀쌀맞다. 그때 두 사람은 호수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었고, 산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아시타카와 달리 산은 조금도 흥미를 갖지 않는다. 딱 한 번 돌아보고는 그냥 가 버린다. 아시타카를 기억하지도 못한 것 같다.
'산'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다른 여주인공들과 다르다. 그가 만드는 여주인공들은 언제나 당차고 강하며 주체적이었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청렴한 마음씨를 갖고 있었다. '산'은 그렇지 않다. 사납고 야성적이고 폭력적이다. 모든 인간을 혐오한다. 들개들의 품 속에서 잠을 자며, 인간에게 가차없이 창을 꽂는다. 털옷을 입고 송곳니를 세운 그녀는 인간보다는 짐승에 가까워 보인다.
산은 생각보다 늦게 등장한다. 영화의 3분의 1은 지나야 한다. 그리고 말도 많이 안 한다. 사실 영화 안에서 그렇게 중요한 역할인 것도 아니다. 영화의 테마는 '인간과 자연의 싸움'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파괴하며 싸운 이야기다. '산'은 그 싸움에서 주역은 커녕 조역도 되지 못한다. 그저 마지막에 아시타카를 도와 사슴 신의 분노를 막는 역할만 맡는다. 주인공이라고 하기는 많이 부족한 활약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중에는 그런 것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 출연이 적어도, 말수가 적어도, '산'의 존재감은 굉장히 크다. 영화의 제목이 <모노노케 히메>인 것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총을 쏘는 인간들, 우람한 몸집으로 땅을 울리며 돌진하는 짐승들 사이에서, 가녀린 몸에 털옷을 걸치고 창을 던지는 '산'의 모습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분명히 '산'이다.
'산'은 인간이다. 언제나 "인간은 싫어."라고 말하지만,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고 한 적은 없다. 들개의 딸로서 살면서 인간과 싸우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들개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인간인 아시타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인간이면서 인간을 싫어하는 소녀. 모순된 것 같지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인간 세상을 싫어하면서도 결국에는 인간과 사랑에 빠지고 마는 사람들. '산'은 그런 인간혐오자의 극단적인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네가 산을 구할 수 있겠냐?"
산의 어머니인 들개 '모로'가 아시타카에게 한 말이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가장 유명한 이 대사는, 다소 뜬금없이 나온다. 아시타카는 산을 구하겠다고는 한 마디도 안했는데, 모로가 갑자기 맥락도 없이 저 말을 꺼낸다. 그런데도 저 대사가 많은 관객들의 뇌리에 박힌 이유가 뭘까? 나는 대사의 호소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녀는 언제나 강인하고 당당하다. 하지만 사실 어떻게 해도 구원받을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에 처해 있다. 인간 세상을 싫어해서 짐승들의 세계에서 살아가려고 하지만, 그녀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결코 짐승들의 세계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마지막에 산은 아시타카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아시타카와 함께 살아가지는 못한다. 산은 앞으로도 계속 고독하게 싸울 것이다. 그녀가 더 이상 인간 세상을 혐오하지 않게 될 때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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