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극장판 애니메이션
- 영화
-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 건담
- 범죄 영화
- 애니메이션 영화
- 톰 행크스
- 스릴러 영화
- 만화
- 건프라
- 봉준호 영화
- 일본 애니메이션
- MCU
- 영화리뷰
- 디즈니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어벤져스
- 크리스토퍼 놀란
- 슈퍼히어로 영화
- 스티븐 스필버그
- 디즈니 영화
- 건플라
- 프라모델
- 스튜디오 지브리
- 지브리 애니메이션
- 미야자키 하야오
- 봉준호
- 캡틴 마블
- 토니 스타크
- 디즈니 애니메이션
- Today
- Total
박쥐의 영화 이야기
<하울의 움직이는 성> - 강대한 마법사와 노쇠한 소녀가 함께 살아가는, 희대의 용두사미 영화 본문
<하울의 움직이는 성> - 강대한 마법사와 노쇠한 소녀가 함께 살아가는, 희대의 용두사미 영화
오늘의박쥐 2019. 6. 7. 20:31한 소녀가 마법에 걸려 할머니가 됩니다. 늙어버린 소녀는 마을을 떠나고, 여행을 하다가 마법의 성을 발견합니다. 그곳은 마법사 하울의 집이었습니다. 늙은 소녀 소피는 움직이는 성 안에서 마법사 하울과 같이 살아갑니다.
하울의 성의 모양새는 매우 뒤죽박죽입니다. 관 옆에 발코니가 딸리고 동그란 지붕 옆에 기와 지붕이 딸렸습니다. 전봇대도 있고 배기구도 있고 장갑판도 있습니다. 굉장히 복잡하지만 하나도 정교하지 않습니다. 어린애들 여럿이 제멋대로 만든 공작품 같습니다. 그런 주제에 터무니없이 거대합니다. 이 거대하고 불안정한 건축물이 고작 네 개의 다리로 걸어갑니다. 이 기상천외한 건축물은 '마법의 성'이라는 것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법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크기와 비과학적인 형태는 성을 만든 하울이 얼마나 강력한 마법사인지 짐작하게 해 줍니다.
그런 위대한 마법사 하울은 정작 생활이 엉망입니다. 소피는 할머니로 변했지만 성실한 생활 태도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존재는 성 안에서 큰 도움이 됩니다. 하울의 성 안에서 소피는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디로든 통하는 문, 불꽃의 악마 캘시퍼의 존재 등, 성은 가면 갈 수록 더욱 신비한 마법으로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줍니다. 그 안에서 허약한 노파의 모습을 하고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소피의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지만, 그 다음부터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울의 스승 설리번이 등장하고, 그녀는 하울에게 왕국으로 돌아와 전쟁에 참여하라고 종용합니다. 소피는 하울이 강하고 상냥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설리번에게 반대합니다. 근데 이 시점까지 소피는 하울과 몇 번 만나지도 않았으며, 하울보다는 그의 제자인 마르클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왜 저렇게 기를 쓰고 하울을 변호하는 건지, 하울을 얼마나 잘 안다고 그의 성품을 논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소피에게 걸린 저주의 효과가 너무 오락가락합니다. 저주에 걸려서 마을에서 살 수 없다고 도망쳤던 것이 이야기의 시발점이었습니다. 근데 별로 강력한 저주가 아니었는지 소피가 잠자고 있을 때나, 당당하게 소리치고 있을 때나, 들판으로 나가기만 해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는 합니다. 이러면 소피가 하울의 성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향에 있는 동생에게 돌아가야 마땅합니다.
소피가 하울과 같이 살면서 사랑에 빠지고, 저주가 풀린 다음에도 계속 하울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좋습니다. 정석적이고 매력적인 휴먼 드라마입니다. 그러나 중간 과정이 생략되면 안 됩니다. 관객들에게 하울이 어떤 캐릭터인지, 어째서 소피가 하울과 사랑에 빠지는지 충분히 이해할 시간을 줘야 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을 속박하고 있는 저주의 효과는 명확해야 합니다. 가끔 가다 풀리기도 하고 안 풀리기도 한다는 식으로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는 저주 때문에 고통받는 주인공의 심리를 관객들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어째서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른 건지 모르겠습니다. 애니메이션 역사에 남을 만한 기발한 건축 미술이 부실한 각본으로 인해 낭비되고 말았습니다.
'영화 감상 이야기 > 미야자키 하야오 시리즈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녀 배달부 키키> - 시대에 뒤쳐진 전통을 잇는 마녀 소녀,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헤메다 (0) | 2019.06.29 |
---|---|
<벼랑 위의 포뇨> -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허무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 그러나 몰입이 안 되는 세계관 (0) | 2019.06.07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요괴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는 소녀를 통해 보여주는, 미야자키 하야오 최초의 '인간 찬가' (0) | 2019.06.07 |
<모노노케 히메> - 대립할 운명인 인간과 자연, 그러나 화합의 희망은 존재한다 (0) | 2019.06.06 |
<붉은 돼지> - 돼지가 되어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파일럿을 그려낸 영화이나, 돼지가 됐다는 것이 뭔지 알 수가 없다 (0) | 2019.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