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의 영화 이야기

<옥자> - 시골 소녀가 자본주의 사회를 경험하는 과정 본문

영화 감상 이야기/봉준호 시리즈 이야기

<옥자> - 시골 소녀가 자본주의 사회를 경험하는 과정

오늘의박쥐 2019. 6. 12. 00:18

미국에서 보내진 슈퍼 돼지를 한국의 시골 소녀가 기릅니다. 그래서 '옥자'라는 촌스러운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렇게 한국 토박이 이름을 가진 돼지가 다시 미국으로 보내지고, 소녀는 돼지를 되찾으러 쫓아갑니다. 그리고 돼지를 원하는 사업가와 돼지의 해방을 원하는 시민 단체의 싸움에 휘말립니다.

<옥자>는 '가축'이란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주인공 소녀 '미자'는 돼지 '옥자'를 친구로 대합니다. 그래서 옥자를 팔거나 먹자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미자'의 입장에서 <옥자>의 스토리를 보면, 그저 친구를 구하기 위해 어떤 위험도 무릎쓰는 용감한 구출극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란도 그룹의 사업가들 입장에서 옥자는 그저 상품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돈을 안겨주고, 고객들에게는 맛있는 고기가 되어주는 '가축'입니다. 옥자는 하나의 생물이기 때문에 사람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식량이 될 수도 있습니다.

환경 운동가들은 옥자를 고귀한 생명으로 대하며 미란도 그룹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막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옥자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옥자가 아니라,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옥자를 일부러 미란도 그룹에 돌려보낸 다음, 옥자를 통해 미란도 그룹의 어둠을 파헤치려는 계획을 꾸밉니다. 그래서 그들은 미자를 돕겠다고 나서지만 실질적으로는 미자와 옥자를 더 위험한 상황으로 밀어넣습니다.

이 영화는 '옥자'라는 하나의 생명을 둘러싼 다양한 입장을 보여줍니다. 모험을 떠나기 전, 미자에게 옥자는 그저 '친구'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옥자가 사업가들에게 팔려가고, 옥자를 구출하려는 과정에서 시민 단체의 입장을 만나면서, 옥자는 더 이상 단순한 존재로 비춰지지 않습니다. 옥자가 미자에게만 '친구'일 뿐이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식량'이거나, '상품'이거나, 혹은 고통받는 '가축들의 대표'였습니다.

미자는 처음에 그런 시선들을 무시하려고 애썼습니다. 그저 옥자를 데리고 돌아가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자는 너무 어렸고 무력했습니다. 어른들의 요구를 무시해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미자는 어른들의 요구를 점차 수용해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대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않고는 자신의 요구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순박한 시골 소녀가 사회와 타협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영화입니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순박한 시골 소녀의 시선에서 풀어나간다는 스토리는 신선합니다. 그리고 시장 원리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현실을 가르쳐주고, 잘 알았던 사람들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의 윤리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줍니다.

그러나 순수한 재미는 떨어집니다. 기승전결 구도라기보다는 기승승결 같은 느낌이 듭니다. 차곡차곡 긴장감을 높여가다가 마지막에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에 한 번씩 터트리고 다시 긴장감을 쌓다가 또 터뜨리는 식입니다. 이런 식이니 영화의 막이 내릴 때도 제대로 끝난 것 같은 기분이 안 듭니다. 특히 낸시 미란도는 그렇게 뒤늦게 등장한 것이 아깝습니다. 그녀는 주인공 일행과 가장 치열하게 대립하는 인물이며, 영화의 주제의식을 직접적으로 설파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캐릭터가 고작 30분 남기고 등장합니다. 그 짧은 시간 안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는 했지만, 더 오래 등장해서 많은 일을 했다면 영화에 더욱 깊이를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