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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봉준호) - 애완견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그러나 통일되지 못한 스토리 본문

영화 감상 이야기/봉준호 시리즈 이야기

<플란다스의 개>(봉준호) - 애완견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그러나 통일되지 못한 스토리

오늘의박쥐 2019. 6. 14. 19:19

<플란다스의 개>는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도시에서 길러지고 버려지는 애완견을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완견 문제'가 주제는 아닙니다. 그저 현대인의 다양한 일면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윤주는 실력이 아닌 연줄로 출세하는 세상에 절망한 대학원생입니다. 그 탓에 스트레스에 쌓여있는 그는 괜히 주변 아파트의 개짖는 소리에 짜증을 냅니다. 아파트 관리소 직원인 현남은 오지랖이 넓은 아가씨입니다. 그녀는 실종된 개를 찾는 주민들을 돕겠다고 업무도 땡땡이치며 나섭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각자 개에게 다른 태도를 취합니다. 누군가에게는 하나뿐인 가족이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짜증나는 동물입니다. 누군가는 식재료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별미로 먹는 사람도 있고 살기 위해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외로운 가정에서 위안을 받기 위한 존재입니다. 누군가는 잠깐 정을 줬다가 말아버리는 존재입니다. 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인데도 이렇게 다릅니다. <플란다스의 개>는 그렇게 다른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개를 사이에 두고 겪는 충돌과 소동을 그리고 있습니다.

두 주인공 윤주와 현남은 사건을 겪으면서 변해갑니다. 윤주는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개를 기르는 행위도 돈낭비라고만 생각하며 경멸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는 하찮은 개가 다른 사람에게는 소중한 가족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반성합니다. 현남은 오지랖이 넓었고, 남을 돕는 자신의 행동을 언젠가 인정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온힘을 다해 실종된 개들을 찾고 다녀봤자 별 의미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점차 알게 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관심도 없었고, 감사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애완견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이용해서 인간 사회의 다양한 면들을 드러내는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입니다. 그러나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영화 전체의 방향성이 애매한 것이 아쉽습니다. 애완견을 중심 소재로 내세우지만 정작 스토리의 핵심에서는 벗어나 있습니다. 두 주인공이 겪는 갈등은 각자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이 원인이지, 애완견이 원인이 아닙니다. 제목만 보고 '인간과 개의 관계'에 대해서 다루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상당히 실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제대로 얽히지 않습니다. 두 주인공이 직접 만나는 데만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립니다. 남은 30분 동안도 별로 깊게 얽히지 않습니다. 둘은 서로의 인생에서 잠깐 스쳐지나간 사이일 뿐입니다. 이러니 둘의 이야기는 따로 놀게 되고, 그 결과 영화가 산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데뷔작인 것을 감안하면 나쁜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열성 팬이어서, 감독의 모든 영화를 보겠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것이 아니라면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이 영화에 나온 메시지는 <괴물>, <마더>, <옥자> 등의 후속작에서 훨씬 세련되게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들을 볼 수 있다면 <플란다스의 개>는 볼 필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