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의 영화 이야기

<기생충> - 가난한 사람은 어째서 '기생충'이, 부자는 어째서 '숙주'가 될 수밖에 없는가? 본문

영화 감상 이야기/봉준호 시리즈 이야기

<기생충> - 가난한 사람은 어째서 '기생충'이, 부자는 어째서 '숙주'가 될 수밖에 없는가?

오늘의박쥐 2019. 6. 22. 20:33

한 부잣집 가정을 속여서 '기생충'처럼 빌붙어 사는 가난한 가정을 다룬 영화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부잣집에 과외 선생으로 취직한 아들은 신분을 속여서 가족 전체를 부잣집에 취직시키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만, 그럴 수록 주인공 가족은 부잣집 가족과 경제력의 격차를 더욱 뚜렷하게 느끼며 열등감이 커집니다.

기생충은 다른 동물의 몸에 들러붙어서 양분을 빨아먹는 벌레입니다. 그 벌레는 스스로 양분을 얻지 않고, 숙주가 애써 섭취한 영양분을 빨아서 살아갑니다. 말하자면 영양분을 도둑질하는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물들은 자신이 숙주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기생충이 훔치는 영양분은 숙주 입장에서는 너무 적은 양이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의 영양분이 어디로 사라진들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생충'이란 제목은 주인공 가족의 행태를 정확하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생충은 사악한 동물이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약해서 다른 동물에게 빌붙지 않으면 혼자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기생충을 혐오하는 사람이라 해도, 기생충더러 '남에게 기생하지 말고 혼자 꿋꿋하게 살아가라.'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기생충>은 영화 내내 어째서 주인공 가족이 '기생충'이 되고 박 사장 가족이 '숙주'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줍니다. 주인공 가족은 '기생충'처럼 약하고, 허기에 시달리는 존재입니다. 돈 한 푼이 없어서 반지하에서 살고, 피자 상자 접는 아르바이트나 하며, 다들 누리는 Wifi도 누리지 못합니다. 특히 다른 집의 Wifi를 몰래 얻어쓰는 <기생충>의 첫 장면은 그들의 '기생충' 같은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에 비하면 박 사장 가족은 '숙주'답게 부유합니다. 그리고 동물들이 수많은 미생물이나 혈구들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듯이, 그들도 잡다한 일들은 전부 아랫사람에게 맡기고 자기들은 더 크고 중요한 일들만 하며 살아갑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것밖에 관심이 없는 '기생충'과 달리, 그들은 교육이나 예술이나 사업 및 브랜드 같은 '중요한' 문제를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이 몸 안에 사는 미생물들에게 신경 쓰지 않듯이, 박 사장 가족도 집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뭘 하는지 크게 신경 안 씁니다. 자기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만 신경 씁니다. 주인공 가족은 그 점을 이용해, 자신들이 박 사장에게 이로운 사람이고 나머지는 해로운 사람인 척 하면서 속입니다. 마치 뻐꾸기 새끼가 남의 둥지에서 태어나서 원래 알을 밀어버리고 남의 집에서 살아가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주인공 가족은 진짜로 벌레가 아닙니다. 그들은 인간입니다. 기생충은 자신이 숙주를 질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른 동물이며 비교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생충>에서는 기생하는 쪽도 기생당하는 쪽도 똑같은 인간입니다. 같은 인간이지만, '숙주'인 박 사장 가족은 은연 중에 주인공 가족을 '기생충'처럼 대합니다. 인간이 벌레를 멀리하고 징그럽게 여기듯이, 그들도 주인공 가족에게 '선을 긋고' 냄새를 혐오합니다. 주인공 가족은 그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파국을 맞이합니다.

'기생충'과 '숙주'는 공생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의 욕구가 만족되는 상황에서는 같이 살아갈 수 있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서로 죽여야 합니다. 기생충이 몸에 해가 되면 숙주가 기생충을 제거해야 하고, 기생충이 충분한 영양분을 얻지 못하면 숙주를 죽이고 다른 숙주를 찾아야 합니다. <기생충>은 부자를 질투하면서도 부자에게 기생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 그런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도 주지 않는 부자들, 두 계급이 어째서 탄생하고 어째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지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기생충과 달리 인간은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기생충 같은 삶을 벗어나서, 스스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꿈 말입니다. 그러나 기생충이 노력한다고 소나 기린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인간도 똑같은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평생 노력해서 돈을 모아도, 부자가 하루에 심심풀이로 쓰는 돈 만큼도 벌지 못합니다. <기생충>의 결말은 그런 현실을 암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