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의 영화 이야기

<괴물>(봉준호) - 거대한 사태 속에서, 고독하게 싸워야 하는 소시민들 본문

영화 감상 이야기/봉준호 시리즈 이야기

<괴물>(봉준호) - 거대한 사태 속에서, 고독하게 싸워야 하는 소시민들

오늘의박쥐 2019. 6. 8. 23:47

한강에 식인 괴물이 나타납니다. 한 소녀가 잡혀갑니다. 소녀의 가족은 경찰에게 호소하지만 들어주지 않았고, 가족은 자기들 손으로 소녀를 구하러 갑니다. 그들은 범죄자로 낙인 찍히고, 정부에게서 도망치면서 동시에 괴물을 찾아다닙니다.

이 영화는 괴물이 모든 것을 가차없이 짓밟는 영화도 아니고, 군대가 괴수와 싸우는 괴수 액션물도 아닙니다. <괴물>에 나오는 '괴물'은 그렇게 크지도 강하지도 않습니다. 등장하는 시간도 별로 많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괴물' 자체보다는 그를 둘러싼 상황에 있습니다. 괴물에게 아이가 잡혀갔는데, 아무도 가족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사람 한 명, 가족 하나에게 신경 쓰기에는 너무 정신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괴물>은 거대한 사태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가족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서민들의 처절한 투쟁을 보여줍니다. '괴물'은 그런 스토리를 보여주기 위한 영화적 장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괴물'은 매우 기형적입니다. 입이 갈라지고 매와 가슴에서 정체불명의 기관들이 튀어나와있고, 생물학상의 분류도 알기 힘듭니다. 하는 짓도 어설픕니다. 길에서 미끄러지기도 하고, 사람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일도 있으며, 먹지도 못할 쓰레기들을 삼키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설픈 탓에, '고질라'처럼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파괴하는 심각한 피해를 입히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대체 어디서 이런 기괴한 생물이 튀어나온 거야?'라는 의문이 드는 외견 탓에 불길한 느낌을 줍니다.

이 괴물은 미군이 버린 폐기물에 의해 생긴 기형생물이라고 나옵니다. 이 '괴물'은 '예측불가능한 인재'인 셈입니다. '상품백화점 붕괴 사고'나 '세월호 침몰 사고'처럼 말입니다. '괴물'은 사회의 숨겨진 뒷면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캐릭터입니다. 정부나 사업가의 무책임한 행동이 돌고돌아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듯이, 미군과 정부의 무책임한 행동이 돌고돌아 '괴물'이라는 위협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결국 <괴물>에서 진정한 위협은 사회입니다. 사회는 무책임한 일처리로 '괴물'이란 사태를 만들어내고, 그 사태에 책임도 제대로 지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은 사회의 도움을 얻지 못하고 스스로 싸워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큰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외롭게 싸워야 하는 시민들에게 나름의 응원이 될 수 있는 희망 말입니다.

아쉬운 점은 정부와 미군이 영화 내내 무능력하거나 사악한 모습으로만 나온다는 겁니다. 특히 만악의 근원인 미군 의사는 너무나도 평면적인 캐릭터로 나와서 영화의 깊이를 떨어트립니다. 또한, 작중에서 수많은 사태가 벌어졌는데 결말에서는 주인공의 후일담만 다루고 다른 것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주인공의 형제들의 뒷이야기조차 말입니다. 다 좋은데 마감새가 좋지 않다고 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