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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잭의 집> - 사이코패스의 자연스러운 파멸 본문

영화 감상 이야기/21세기 영화 이야기

<살인마 잭의 집> - 사이코패스의 자연스러운 파멸

오늘의박쥐 2019. 7. 28. 23:34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입니다. 지옥에 가게 된 살인마 잭이 자신이 저지른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철학과 인생관에 대해 말하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틀을 과감하게 깨트린 연출 능력이 인상적입니다.

잭은 뛰어난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맛이 가 버린 인간도 아닙니다. 그저 사이코패스입니다. 나름 머리도 좋고 철학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며, 하는 짓도 매우 어수룩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이유에 대해 별의별 복잡한 이유를 대지만 전부 의미없습니다. 결론은 충동적인 행동이란 겁니다. 왠지 죽이면 뭔가 충족되는 기분이라서 죽인다는 겁니다.

<살인마 잭의 집>은 스릴러 영화입니다. 하지만 숨죽이는 추격전이 벌어지는 그런 스릴 넘치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즐기면서 볼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잭'은 마치 우리 옆집에라도 있을 것처럼 사실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는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않고 대충 살인을 저지르는데, 상대방이 더 멍청하기 때문에 어쩌다가 성공합니다. 그게 불가능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불쾌합니다.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매우 쉬운 일이라고 하면 누구든 소름이 끼칠 겁니다.

<살인마 잭의 집>이란 제목처럼 잭은 집을 지으려고 합니다. 집은 자신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말합니다. 잭에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어딘가 망가진 내면을 지닌 잭은 무슨 집을 만들어도 안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신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일시적입니다. 살인은 매일매일 일상적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결국 잭은 마지막에 가서야 자신만의 집을 찾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살 수도 없는 집이고, 보기만 해도 끔찍한 형상이지만, 잭이라는 인간 자체를 표현한 것 같은 집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잭이라는 살인마를 미화하지도, 비난하도 않습니다. 그저 그가 왜 살인을 하고 어떻게 살인을 하는지만 보여줍니다. 뭔가 허전한 마음을 채우려는 욕구라는 점은 평범한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사람들을 다짜고짜 죽이는 모습은 어떻게 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면은 알 만하고 어떤 면은 모르겠기 때문에 잭이라는 인물은 더욱 알쏭달쏭합니다.

<살인마 잭의 집>은 살인마에 대해 더 이해하게 만들면서도 동정심은 들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 부분이 매우 절묘합니다. 잭이 살인을 저지르는 충동은 이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잭이 그렇게 된 것에 누군가의 책임은 없습니다. 전부 잭 스스로가 정신이 나간 인간이어서 행한 짓입니다. 잭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설명할 수록 그것은 뚜렷해집니다. 잭은 자존심이 무척 강한 인간이라 무언가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남의 탓이 아닙니다. 그저 잭이라는 인간이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미친 인간이었을 뿐입니다. 그것은 마지막에 잭이 지은 '집'의 모양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런 집을 짓는 인간은 미친 인간 말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인간은 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에서 잭이 택한 마지막 행동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았는데 잭은 스스로 파멸을 향해 나아갑니다.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벌을 받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걸 보면 통쾌함도 씁쓸함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살인마의 자연스러운 최후라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