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의 영화 이야기

<터미널> -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사람이 살 수 없을 리 없다 본문

영화 감상 이야기/스티븐 스필버그 시리즈 이야기

<터미널> -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사람이 살 수 없을 리 없다

오늘의박쥐 2019. 6. 25. 21:42

<터미널>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행크스 주연의 드라마 영화입니다. 제3세계 국가에서 미국으로 입국하려던 주인공이, 바로 그때 고국에서 일어난 쿠데타로 인해 여권의 효력을 잃으면서, 미국에 입국하지도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공항 터미널에서 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터미널>은 '공항'이란 공간을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듭니다. 국제공항에서 사람들은 입국 심사를 받습니다. 입국 심사란 이름 그대로 '나라' 안에 들어와도 된다는 허가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입국 심사를 받기 전에는 아직 나라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공항 자체는 미국 영토 안에 있고, 시설도 미국에서 만들었으며 미국이 관리하지만, 정작 입국 심사대 앞까지는 미국 영토가 아니라는 모순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 영토도 아닙니다. 미국의 건물이지만 미국의 영토는 아닌 이상한 공간입니다. 영화 안에서도 이를 '법률상의 맹점'이라고 지적합니다.

주인공은 나라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공항 터미널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터미널은 원래 사람 살라고 만든 곳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것은 본래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본래 사람들이 그저 통과기 위해 존재하는 건물이라 해도, 그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시설입니다. 그곳에는 먹을 것도 있었고, 잘 곳도 있었고, 일할 곳도 있었고, 친구가 되어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터미널에서 살아갈 방법을 익힙니다.

주인공은 하루 아침에 나라를 잃고 갈 곳이 없어졌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있는 곳은 어떤 국가도 속해 있지 않고 방치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도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고, 사람의 손으로 관리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설령 국가 없는 방랑자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처지에 상관없이 그저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 태도는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샀고, 그는 어느새 터미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의 도움에 힘입어 주인공은 마침내 본래의 목적까지 이루게 됩니다.

참고로 <터미널>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모티브가 된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라는 이란인은 난민 신청을 하고 영국으로 갔으나, 서류를 잃어버려 되돌아가야 할 상황이었고, 결국 귀국을 포기고 도중에 들린 프랑스의 샤를 드 골 공항에서 머무르며 18년을 살았습니다. 사실 '입국 자격 없이 공항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라는 점만 빼면 차용한 부분은 거의 없긴 하지만, 아무튼 공항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영화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은 입증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