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이야기/미야자키 하야오 시리즈 이야기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 돈이 아니라 도둑질이 목적인 괴도의 유쾌한 활극

오늘의박쥐 2019. 6. 4. 22:02

괴도 루팡은 자신이 훔친 돈이 위조지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도 칼리오스트로 공국에서 찍어내는 전설의 위조지폐 '고트 지폐'였습니다. 루팡 일행은 칼리오스트로 공국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강제 결혼에서 도망치는 공녀 클라리스를 만나고 도와주기로 합니다. 루팡 일행은 클라리스를 가두고 있는 라셀 백작에게 '신부를 훔쳐가겠다.'라는 도전장을 내밀고, 철저한 경비로 지켜지고 있는 칼리오스트로 성을 털기 위한 대작전에 돌입합니다.

강제로 결혼하게 된 신부를 성에서 구출한다는 정석적인 영화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는 조금 다릅니다. 루팡은 아무런 대가 없이 뛰어듭니다.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니고, 성공하면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척 보니까 신부가 피해자고 백작이 가해자이므로 구합니다.

그렇다고 약자를 도와야한다는 불굴의 정의에 타오르는 히어로도 아닙니다. 그냥 그쪽이 재미있을 것 같고 기분 좋을 것 같기 때문에 합니다. 그리고 루팡은 실제로 재미있게 일을 저지릅니다. 고물 경차를 이끌고 방탄 차량과 추격전을 벌이며, 신부에게 항상 미소를 지어주고 아이를 어르듯이 달래며, 백작의 부하들이 칼을 겨누고 총을 쏘는 와중에도 유쾌한 표정을 잃지 않습니다. 그는 사악한 백작과 부하들을 계속 약올려댑니다. 루팡이 영화 내내 즐겁게 싸우고 있기 때문에, 루팡이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를 그저 순간적인 충동 만으로 도와주는 상황을 관객들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루팡은 괴도면서 돈에는 별로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는 도둑질의 목표보다도 과정을 더욱 즐깁니다. 그래서 루팡이 마지막에 무일푼으로 돌아가는데도 결말이 허무하지 않습니다. 그때까지 영화가 내내 즐겁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레이스를 벌이고, 지하수도를 잠수해서 통과하고, 수많은 자객들과 칼싸움을 하고 추격전을 벌이고, 지하감옥에서 간수들을 속여 탈출하고, 시계탑을 무너뜨립니다. 온갖 기상천외한 모험들을 하며 루팡은 즐거워하고, 그래서 관객들도 즐겁게 봅니다. 마지막에 후련하게 도망치는 루팡을 보면서 후련하게 감상을 마칠 수 있습니다.

괴도인 루팡보다는 백작이 더 돈에 집착합니다. 그는 매일 만찬을 즐기고 수많은 하인들을 부리는 대부호인데도 불구하고 탐욕에 물들어 있습니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기 위해 위조지폐를 찍어내고, 대공의 지위를 얻기 위해 강제로 공녀와 결혼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왔습니다.

영화는 내내 루팡과 백작을 대조적으로 그려냅니다. 루팡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을 때 백작은 다 먹지도 못할 호화로운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루팡이 대가 없이 공녀를 구하려고 할 때, 백작은 자신의 탐욕을 위해 공녀를 가두고 괴롭힙니다. 루팡은 마지막에 백작 자신의 탐욕을 이용해서 그를 함정에 빠트립니다. 인과응보의 결말입니다. 이렇게 대조적인 악당과 싸우는 모습에서 루팡의 개성적인 특징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모험을 즐기는 사나이의 통쾌한 액션 활극이라는 점에서는 볼 만 했지만, 스토리 구성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스토리의 시발점이 되었던 '고트 지폐'는 도중부터 스토리의 줄기에서 벗어납니다. 소위 말하는 '맥거핀'입니다. 루팡은 본래 고트 지폐의 진상을 밝히러 왔을 텐데, 클라리스를 구하려고 하면서부터 거의 신경도 쓰지 않고, 결국 고트 지폐 문제는 루팡과 무관하게 해결됩니다. 백작의 행동도 일관성이 부족합니다. 영화 내내 클라리스와 결혼하려고 그렇게 애를 쓰더니 막판에는 갑자기 죽이려고 듭니다. 그리고 클라리스의 반지를 루팡이 가져가자 무슨 수를 써서든 찾으려고 기를 쓰는데, 위조 지폐는 수십 종류가 넘게 찍어대던 인간이 반지 하나 위조 못한다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렇게 세세한 부분을 따지면 오류가 많은 영화지만, 세상사에 초탈한 사나이의 모험 활극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첫 번째 극장판에서 이런 걸작을 만들 수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 철학과 미술 감각이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