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 영웅들은 각자 다르기에, 때로는 서로 싸울 수도 있다
<어벤져스>는 아무리 다른 영웅들도 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렇게 같은 목적을 공유한다면 말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설령 같은 목적을 지녔다고 해서 항상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빌 워>는 시간대 순으로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이어지지만, 영화의 스토리 흐름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와 훨씬 밀접합니다. <윈터 솔져>에서 캡틴은 어벤져스의 상위 기관인 실드를 붕괴시켰습니다. 이후 어벤져스는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경대나 다름없어집니다. 세계는 이를 용납하지 않으며 새로운 통제를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소코비아 협정'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캡틴이 협정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이제 와서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라면 <윈터 솔져>에서 실드를 없애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소코비아 협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세계에 등을 돌리고 도망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비난하는 그대로 자경대가 되는 겁니다. 아이언맨은 어벤져스가 불법 단체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따라서 협정에 서명합니다. 나머지 멤버들도 각자의 이유로 협정에 찬성하거나 반대합니다. 그렇게 나눠진 무리들은 '윈터 솔져' 버키 반즈의 처우를 놓고 대립하게 됩니다. 윈터 솔져는 국가 입장에서는 범죄자지만, 동시에 국가에 의해 생체 병기로 이용당한 피해자입니다. 아이언맨을 따르는 이들은 국가의 명령에 따라 윈터 솔져를 체포하려 하고, 캡틴을 따르는 이들은 국가로부터 윈터 솔져를 구하려고 합니다. 좀처럼 양측이 타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어벤져스를 적대하는 헬무트 제모가 윈터 솔져에게 누명을 씌우면서 양쪽의 갈등을 심화시킵니다. 윈터 솔져의 누명을 벗기고 제모를 막기 위해서 법률을 어기기 시작하는 캡틴 아메리카와, 일단 국가의 통제를 따라 윈터 솔져를 체포하려는 아이언맨 측은 라이프치히-할레 국제공항에서 전면전을 벌이게 됩니다.
<시빌 워>는 역대 슈퍼히어로 영화 중에서 영화광들에게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아직도 인터넷을 찾아보면 아이언맨과 캡틴 중에서 누가 옳았는지 논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저도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해서 나름의 개인적인 의견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논의가 오갔습니다. 제가 한 마디 덧붙인다고 해서 아직도 나오지 않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벤져스>와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그렇게 한 마음 한 뜻으로 싸웠던 '어벤져스'가 둘로 분열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 중 누군가가 악당으로 타락한 것도 아닙니다. 마음이 변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어벤져스> 시리즈에 나왔던 위대한 영웅 그대로였습니다. 그들의 가치관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벤져스>에서는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던 가치관이 <시빌 워>에서는 서로 싸우게 만들었습니다.
캡틴과 아이언맨이 싸우게 된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서로가 살아왔던 환경의 차이, 윈터 솔져를 보는 시선의 차이, 애초에 둘을 갈라놓으려고 한 헬무트 제모의 음모, 양쪽의 합의할 시간을 주지 않는 UN의 압박도 있습니다. 그러나 둘이 갈라지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어벤져스'를 보는 시선의 차이입니다.
어벤져스는 '영웅들이 더욱 큰 선행을 하기 위한 모임'입니다. 아이언맨은 서로 모여서 힘을 합치는 것을 더욱 중요시했지만, 캡틴은 언제라도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아이언맨은 '어벤져스'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지만, 캡틴은 옳은 일을 할 수 없다면 어벤져스는 필요 없다고 여겼습니다. 나머지 슈퍼히어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벤져스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이들은 아이언맨에게 붙었고,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어벤져스를 버리고 국가에게 반역할 각도도 되어있던 이들은 캡틴에게 붙었습니다.
<시빌 워>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어벤져스>에서 토르와 아이언맨이 싸우거나 헐크와 블랙 위도우가 싸우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그것은 아직 팀을 이루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서로 싸울 정도로 마음이 안 맞았던 그들은 같이 싸우면서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팀이 되었습니다. <어벤져스>는 서로 다른 영웅들에게서 공통점을 찾아가는 영화였습니다.
<시빌 워>는 영웅들의 차이점을 찾아갑니다. 똑같이 선량한 마음을 갖고, 초인적인 힘을 갖고, 결코 물러서지 않는 신념을 가졌지만, 그 마음과 힘과 신념은 서로 다릅니다. <시빌 워>는 '어벤져스'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집단으로 만든 영웅들을 다시 개인으로 만듭니다. 소코비아 협정을 시작으로 드러나는 서로의 차이점은 공항 위의 전면전에서 양립할 수 없는 대립으로 부각됩니다. 그리고 각 캐릭터들의 서로 다른 성격과 전투법을 컷 하나하나에 정성들여 담아낸 루소 형제의 연출력에 힘입어, <시빌 워>는 역대 가장 많은 수의 슈퍼히어로들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특성을 관객들에게 전달합니다. 다 같은 슈퍼히어로인데도 어째서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각자의 매력인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