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이야기/MCU 이야기

<토르: 천둥의 신> - 누군지도 모를 주인공이, 어딘지도 모를 고향에서 쫓겨나, 뭔지도 모를 망치를 잃어버리는 영화

오늘의박쥐 2019. 5. 23. 15:27

토르와 로키라는 형제 왕자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토르가 왕국에서 쫓겨납니다. 그 틈을 타서 로키가 왕위를 차지하려 듭니다. 쫓겨난 토르가 돌아와서 로키를 몰아냅니다. 왕국이 평화를 되찾습니다. 끝입니다.

이게 대체 왜 슈퍼히어로 영화로 분류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는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왕실의 가정 비극입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두 형제가 서로 싸우다가 한 쪽이 이기고 한 쪽은 지는 내용이죠. 영웅이 세계를 구하는 슈퍼히어로 영화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 <토르: 천둥의 신>은 이런 장대한 판타지 세계의 싸움에 억지로 미국 뉴멕시코 이야기를 끼워넣습니다. <어벤져스>에 끼워넣으려는 일념으로 말입니다. 아스가르드와 요툰헤임이라는 두 왕국의 대전쟁을 다루던 영화가, 갑자기 한적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 목가적인 영화로 변질됩니다. 그리고 아스가르드에서 토르와 함께 전장을 누비던 동료들은 갑자기 사라지고, 지금까지 이야기와 하나도 관계 없는 괴짜 과학자들이 주역으로 등장합니다. 시청하는 중에 갑자기 다른 영화가 틀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가 딴판으로 바뀝니다.

이 영화에 뉴멕시코는 전혀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뉴멕시코에 떨어졌다는 사실이 토르에게 하나도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토르가 오만함을 뉘우치는 것은 그저 묠니르를 들지 못했다는 것과, 자기를 지키려다가 사람들이 위기에 처하는 것을 보고 고통스러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굳이 뉴멕시코까지 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토르: 천둥의 신>은 스토리에 필요하지도 않게 배경을 교체하며 관객들에게 혼란만 안겨 주었습니다.

판타지 영화는 무척 치밀하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토르: 천둥의 신>에 나오는 아스가르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와 문화도 다르고, 사람들의 신체적 능력도 다르며, 과학적 기술력도 다릅니다. 관객들이 아스가르드의 세계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합니다. 그런데 <토르: 천둥의 신>은 고작 30분 만에 설명을 마쳐 버리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 결과 관객들은 아직 누군지도 잘 모를 주인공이,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를 고향에서 쫓겨나,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강력하고 소중한 무기를 빼앗기는 이야기를 봐야 합니다. 관객에게서 집중력을 앗아가기 위한 각본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