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이야기/봉준호 시리즈 이야기

<기생충>[스포일러 리뷰] - 박 사장의 '집'이 부조리한 이유

오늘의박쥐 2019. 11. 22. 01:23

'행복은 나눌 수록 커지잖아요.'

영화 포스터에 적힌 말이다. 모두가 입으로는 말하지만,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말이다. 배우들의 눈이 가려진 삭막한 포스터는 표어를 더욱 가식적으로 보이게 한다.

더구나 제목이 '기생충'이다. 제목과 표어를 함께 놓고 보면 더욱 꺼림칙하다. 기생충과 행복을 나누며 더욱 행복해진다? 웃기지도 않는 말이다. 영화를 보기도 전부터 방향성이 짐작 간다.

그렇다. 블랙 코미디다. 세상의 부조리를 이용해 웃음을 주는 장르 말이다. <기생충>은 부조리로 가득하다. 날 때부터 잘 사는 사람들. 한편에서는 반지하방에서 피자박스를 접으며 사는 사람들. 취직하기 위해서 날조와 속임수를 쓰는 주인공들. 사람을 가볍게 해고하는 부자들. 그때마다 먹고 살 길이 없어지는 서민들. 그리고 집 주인도 모르는 지하실의 주민.

그러나 최대의 부조리는 '집'이다. 박 사장의 집은 너무 넓다. 네 사람이 살기에는 말이다. 너무 넓어서 그들은 자기 집을 다 파악하지도 못한다. 집을 비우는 사이에 네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몰래 들어와도, 지하실에 누군가가 몰래 숨어 살고 있어도, 집 주인은 아무것도 모른다. 너무 넓어서 자기 집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는 생활. 좁아터진 집에 사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집이 너무 넓기 때문일까? 정작 집 안에 사는 박 사장 가족은 사이가 가깝지 않다. 아버지는 집안일에 관심이 없고, 어머니는 교육에 자신이 없다. 딸은 반항기다. 아들은 이해하기 힘든 장난을 계속한다. 아들과 딸의 방은 위층에 있다. 자식들이 어머니를 보려면 한참을 걸어 내려와야 한다. 아버지는 밤이나 주말에나 볼 수 있다.

기택의 집은 반대다. 작은 반지하방이다. 개인실도 없다. 네 명이 앉아 있기도 좁은 공간이다. 항상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끈끈하게 뭉쳐있다. 마음이 잘 맞는다.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화해도 빨리 한다. 서로에게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두 '집'의 이야기다. '집'이란 가족을 말하기도 하고, 건물을 말하기도 한다. 둘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두 가족의 차이. 두 집의 차이. 그것은 무슨 수를 써도 좁혀지지 않는다. 둘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살아온 공간 자체가 다르니까.

기택 가족은 박 사장 가족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박 사장 가족을 속여서, 박 사장의 '집'에 들어오려고 한다. 가족 전부가 박 사장 집에 고용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계획은 일사천리로 성공한다. 기택 가족은 순식간에 박 사장 집안의 사정을 파악하고, 그 점을 이용해 박 사장 가족을 속여넘기고 만다. 박 사장 집은 과외 선생, 가정교사, 운전사, 가정부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기택 가족은 한 명씩 전문 직업인으로 위장하여 고용되는데 성공한다.

이게 부조리다. 박 사장 가족은 자기 집에 대해 모른다. 모든 것은 고용인들이 틀어쥐고 있다. 자식들의 교육은 가정교사들이 책임지고, 집안일은 운전수와 가정부가 책임진다. 도대체 이 '집'은 누구의 집일까? 박 사장 가족은 이곳을 정말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적어도 기택 가족이 생각하는 '집'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이 부조리는 지하실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절정에 이른다. 집 주인조차 존재를 모르는 지하실. 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집 주인이 집을 비울 때도, 집안 사람들이 전부 잠들었을 때도, 언제나 바닥 아래에 있었다. 심지어 지금의 주인이 들어오기도 전부터.

집 안에 사기를 쳐서 들어온 기택 가족. 지하실에서 살고 있던 부부. 그들은 싸움을 벌인다. 서로를 집에서 쫓아내기 위해서. 집에서 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죽는다. 블랙 코미디는 어느새 유혈낭자한 살인극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러나 여전히 영화는 부조리하다. 왜냐고? 그들 중 아무도 집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 주인은 여행을 떠난 탓에, 자기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자기 집에서 두 가족이 서로 죽고 죽이고 있는데 말이다. 자기 집에서 살 권리를 얻겠다고 말이다.

남의 집을 갖고 서로 싸우는 두 가족. 그러는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집 주인. 이것이 <기생충>이다. 이 영화는 지금 세계 최고의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하고, 한국을 넘어서 전세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어째서일까? 이것은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일까? 부자가 지배하는 세상. 그곳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가난한 사람들. 자신이 있을 곳을 위해서 서로 싸우고 죽이는 비극. 그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부자들. 그것은 어디에나 있을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