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스포일러 리뷰] - 호다카를 설득할 말이 있었을까
※ 영화 <날씨의 아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내내 비가 온다. <날씨의 아이>를 보고 기억나는 것은, 온통 비 내리는 장면 뿐이다. 빗방울, 웅덩이, 우산, 비옷, 젖은 옷과 머리카락. 이 영화는 내내 빗물에 젖어있다.
날씨는 마음에 영향을 준다. 우중충한 날씨 탓에 영화의 분위기도 우중충하다. 가출소년, 소녀가장, 가십기사, 인신공양, 성매매, 총기 사고, 도주극, 양육권 분쟁. 도무지 밝은 소재가 없다. 도쿄의 밝은 면을 주로 묘사했던 <너의 이름은.>하고는 다르다. <날씨의 아이>를 보고 있으면 도쿄에 환멸이 느껴지려고 한다. 마치 도쿄의 사회 문제를 한곳에 담아내려고 한 것 같다.
그러나 영화의 도입부에서 주인공 호다카는 일부러 빗속에 뛰어든다. 엄청난 폭우 때문에 경고 방송까지 나오지만, 신경 쓰지 않고 갑판으로 나간다. 그 바람에 죽을 뻔했다. 하지만 빗속에서 호다카는 즐거워 보인다. 해맑은 얼굴이다.
호다카가 왜 그렇게 웃고 있었을까? 영화는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있다. 호다카에게 비가 온다는 것은 우울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호다카의 상황은 결코 밝지 않다. 가출해서 의탁할 곳도 없고,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들고, 경찰에도 쫓기는 신세다. 그러나 호다카는 좌절에 빠지지 않는다. 일이 풀리지 않아도 여유로워 보인다. 그래서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친절도 발휘할 수 있다.
호다카만이 아니다. 히나도, 케이스케도, 나츠미도, 나기도, 다들 빗속에서도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다. 자기 앞가림도 힘든 상황에 남에게 친절을 발휘한다. 그렇게 주고받는 친절만이 그들에게 살아갈 이유를 준다.
히나에게는 '날씨를 맑게 하는 능력'이 있다. 히나가 희생하면 도쿄의 모든 비가 그치게 된다. 히나는 그것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히나가 비를 그치게 하고 사라졌을 때,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호다카와 나기는 비가 오든 안 오든 아무래도 좋았다. 그들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저 히나와 함께 있으면 행복했다. 아무리 비가 쏟아지는 곳이어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맑은 곳에서라도 히나 없이는 행복할 수 없었다.
마지막에 도쿄는 빗물에 잠긴다. 세상은 구원받지 못했다. 호다카의 생활도 나아지지 못했다. 호다카는 그렇게 싫어하던 고향으로 다시 끌려가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다시 도쿄로 돌아오지만 앞날이 딱히 밝지도 않다. 3년 전에 겪었던 취업난을 여전히 겪어야 한다. 이번에는 물에 잠긴 도시 속에서.
비극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우울했던 영화는 더욱 우울한 상황을 맞이하며 끝난다. 하지만 호다카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호다카는 처음부터 빗속에서도 밝은 소년이었다. 날씨가 맑든 흐리든, 호다카는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호다카로서는 3년 전보다 나아진 것이 있다. 사랑하는 소녀가 옆에 있으니까. 그걸 위해 호다카는 싸운 것이다. 도쿄에 다시 비를 뿌린 것이다. 그 비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할든 간에 신경쓰지 않고.
호다카는 히나를 구하지 말아야 했을까? 히나 한 명을 희생해서 도쿄의 폭우를 막아야 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다카를 설득할 수 있는 말이 있었을까. 모르겠다. 너에게 행복을 안겨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포기해야 하라고, 뭐라고 해서 납득시킨단 말인가. 그러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