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스포일러 리뷰] - 총을 쥐었으니 방아쇠를 당겼을 뿐이다
※ 이 글은 <조커>(2019)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름답지 않아?”
불타는 시내. 모조리 때려부수는 폭도들. 그 광경을 보면서 주인공이 남긴 감상이다. 아름답지 않냐고.
폭력과 혼란. 스크린에 비치는 것은 그것뿐이다. 그것을 보며 주인공 ‘조커’는 깔깔 웃는다. 미친 것처럼 말이다.
그 모습에 공감하는 내가 있었다.
영화의 제목은 ‘조커’다. 조커는 장난꾼이다. 남을 웃기는 사람이란 뜻이다. 주인공 ‘아서 플렉’은 남을 웃기는 코미디언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아서는 하나도 웃긴 사람이 아니다. 정신질환에 걸렸으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슬픈 인간상이다. 그를 보면 애처롭기만 하지, 하나도 웃기지 않다. 그 삶이 아서를 더욱 미치게 만들고 슬프게 만든다.
그러나 권총 한 자루가 모든 것을 바꾼다. 열차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자 세 명이 아서에게 시비를 걸자, 얻어맞던 아서는 저도 모르게 총을 쏴 버린다. 반사적인 행동이었을 것이다. 머리에 열이 올라서 아무 생각도 없이 쐈을 것이다. 하지만 아서는 한 발로 멈추지 않았다. 다음 사람을 쏘았다. 마지막 한 명이 도망갔다. 열차에서 내려서 뒤쫓아 가 쏘았다. 상대가 죽은 뒤에도 쏘았다.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다음날 사건은 대서특필된다. 모두가 아서의 살인사건을 언급했다. 그들은 피해자들이 거대 기업 웨인 사의 사원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도시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급 갈등에 주목했다. 마침 아서가 광대 분장을 하고 있던 것에도 주목했다. 그들은 아서가 왜 이런 사건을 벌였는지 이야기했다. 계급 갈등 때문이라고, 시위의 일환이라고, 웨인 그룹 회장 토마스 웨인을 향한 원한이라고 말했다. 완전히 엉터리였다.
아서가 그들을 죽인 것에 이유는 없다. 아서는 아무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세 명의 남자가 당신을 둘러싸고 짓밟고 있는데, 무슨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서는 그저 이러다간 죽겠다는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문득 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총을 쏜다는 것이 이상한 일일까? 이상하지 않다.
결국 그렇다. 살인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도덕적이고 파렴치하며 끔찍하고 잔인무도한 일이라고 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대체 왜 죽였는지에 대해서 한 도시의 시민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살인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 말고는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손에 총이 있었을 뿐이다.
열차에서 살인한 것은 그렇게 설명이 된다. 그렇다면 그 뒤에도 계속 총을 쏜 이유는 무엇일까?
똑같다. 아서는 그 뒤로도 일이 전혀 풀리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삶은 고통스러웠고, 주위에 자기를 이해해줄 사람도 없었다.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은 전부 자기를 배신했다. 결국에는 유일하게 자기편이었던 어머니도 자신을 누구보다도 괴롭게 만드는 존재라고 깨닫는다. 상황을 해결할 실마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여전히 아서에게는 권총이 있었다. 그래서 쐈을 뿐이다.
폭력은 나쁜 것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진심으로는 폭력을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도저히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도덕과 양심을 생각할 수 없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그때 문득 자신의 손에 권총이 쥐어져 있다고 치자.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된다.
아서는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른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자들을 차례대로. 그것 말고는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마침내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자를 찾아낸다. TV 스튜디오에 앉아서 자신을 조롱하는 코미디언. 아서는 생방송으로 모두가 보는 와중에 총을 쏴 버린다. 그것을 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 아서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희망을 찾지 못하던 이들은 문득 깨달았을 것이다. 자기 손에 무기가 있다는 것을.
그게 끝이었다. 사람들은 무기를 휘둘렀고, 그들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이 부서졌다. 불타올랐다. 도시가 불탄 것이다.
그걸 보며 아서는 웃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이 파괴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 기분에 공감했다. 나도 사회의 불만분자 중에 한 명이기 때문에.
그것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사회에 아무리 어둠이 넘치더라도, 그것을 불사르고 파괴하는 것은 단순한 광기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상관없다. 그들은 그렇게 살면 된다. 그들은 아직 ‘생각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니까. 총을 쏘지 않아도 된다. ‘조커’와 그의 추종자들과 달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