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 - 꿈과 현실의 경계에 대해 경고하는 비주얼 애니메이션
콘 사토시 감독의 유작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다른 사람의 꿈에 접속할 수 있는 기계 'DC미니'가 발명되고, 이 기계를 이용해 사람들의 꿈속에 들어가 심리 치료를 돕는 소녀 '파프리카'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DC미니의 개발사에서는 다른 사람의 꿈을 조작하여 죽음을 유도하거나 미치광이로 만드는 사건에 대한 보고가 들어옵니다. 파프리카는 DC미니를 훔쳐 악행을 저지르는 범인을 찾기 위해 피해자들의 꿈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사건은 더욱 커져 범인은 잠들어 있지 않은 사람들의 의식 속까지 침투하고, 이내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져가는 사태로 발전합니다.
남의 꿈에 들어간다는 스토리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꿈'을 묘사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파프리카>가 훨씬 느낌을 잘 살렸습니다. 논리적이고 사실적인 <인셉션>의 꿈과 달리 <파프리카>에 나오는 꿈은 비논리적이며 몽환적이고 신기방기합니다. 가구들이 퍼레이드를 벌이고, 주인공의 위치가 갑자기 뒤바뀌고, 총격전을 벌이다가 갑자기 타잔이 되었다가 열차에 타고 있는 등, 시공간의 개념도 없고 인과관계도 없습니다. 말도 안 되지만, 그래서 더 진짜 같습니다. 꿈이란 말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꿈도 아무 규칙 없이 무작위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꿈은 사람의 기억과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난 영상입니다. 콘 사토시 감독은 그것을 잊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잘 파악하여 꿈에 일관성을 부여했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들은 전부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꿈 속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영확 감독을 꿈꾸었던 자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꿈을 꾸고, 여자를 원했던 자는 여자를 가두는 꿈을 꾸며, 다리가 없는 자는 새로운 몸을 갖는 꿈을 꿉니다.
꿈은 사람이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깊은 속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그런데 <파프리카>에서는 거울 안에 또다른 사람이 들어갑니다. 꿈은 본래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왜냐면 자기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타인이 꿈에 간섭하기 시작하면서 꿈은 현실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꿈을 들여다보거나 조작한다는 것은 그런 위험성을 지녔다는 것을 <파프리카>는 지적합니다. 꿈과 현실의 경계는 생각보다 애매하며, 꿈을 머릿속이 아닌 바깥으로 꺼내는 순간부터 경계는 완전히 무너집니다.
꿈에 관한 연구가 인류에게 이득을 가져올지 해악을 가져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꿈과 현실이 명확하게 구분된 것이 아니며, 우리가 꿈에 대해 알아갈 수록 둘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파프리카>에 묘사된 재앙이 현실에 일어나지 마란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