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문학 이야기

캐리(소설) - 세상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초능력 소녀의 재앙

오늘의박쥐 2019. 7. 11. 00:04

스티븐 킹의 장편 데뷔작인 <캐리>는 초능력을 지닌 소녀 캐리 화이트가 가정학대와 집단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초능력으로 마을을 파괴하는 복수극 형식의 공포소설입니다. 무명 소설가 킹을 단번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띄워줬으며 2번이나 영화화가 되었을 정도로 인기 있는 소설입니다.

명성에 비해서 소설의 완성도는 빈말로도 좋지 못합니다. 일단 주인공 캐리 화이트의 심리 묘사가 상당히 빈약합니다. 주인공인 캐리보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엑스트라들의 심리 묘사가 더 많이 나오는 탓에, 전체 구성이 산만합니다. 그리고 후반 캐리의 복수극은 억눌린 분노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단순한 광인으로 보입니다. 복수하는 캐리의 심리 묘사가 너무 간결하고 최후가 갑작스러워서 캐리의 심리에 대해 독자들이 생각해 볼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캐리>라는 소설의 저력을 저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이 소설이 섬뜩한 이유는 어디엔가 있을 것 같은 '캐리 화이트'의 인물상 때문입니다. 성적인 지식을 더러운 것으로 취급하며 집에서 억압받고, 그 탓에 소심한 성격으로 자라서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하는 소녀. 문화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세상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인간상입니다. 이런 소녀가 어느날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해 분노를 터뜨리게 됩니다. '초능력'의 존재만 빼면 세상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묻지마 살인마나 미국의 총기난사 등의 상당수가 이런 이유로 발생한다고 전해집니다.

'캐리 화이트 사건'은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 재앙이었습니다. 캐리 화이트는 살육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살육광이 된 이유는 선천적인 악인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상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학대와 따돌림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노가 갈길을 잃고, 죄 있는 사람과 죄 없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쏟아졌을 뿐입니다. <캐리>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이런 사건이 얼마든지 더 벌어질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아무 일 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당신의 고향도, 어딘가에 '캐리' 같은 존재가 있을지 모르며, 그런 존재가 언제 분노를 터뜨려 재앙을 가져올지 모른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