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이야기/미야자키 하야오 시리즈 이야기

<벼랑 위의 포뇨> -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허무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 그러나 몰입이 안 되는 세계관

오늘의박쥐 2019. 6. 7. 21:56

<벼랑 위의 포뇨>는 지브리 버전의 <인어 공주>입니다. 자기를 구해준 소년 소스케를 사랑한 물고기 포뇨가 인간으로 변해 소스케를 찾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썼다는 것과, 진정한 사랑이 있으면 인간으로 영원히 있을 수 있다는 것까지 똑같습니다.

그러나 <인어 공주>의 에리얼과 달리 포뇨는 인어가 아니라 물고기입니다. 인간의 말을 할 수 없고, 물밖으로 나올 수 없으며, 작고 연약합니다. 그래서 에리얼처럼 아빠 몰래 인간들의 세상을 구경하거나, 인간의 물건을 수집할 수 없고, 왕자를 자기 손으로 구해내서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포뇨가 소스케와 맺어지기 위해서는 에리얼보다 훨씬 높은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그래서 포뇨는 아버지가 오랜 시간 모아둔 마법의 힘을 뺏어갑니다. 그 힘은 자연을 바꾸기 위해 모아둔 힘입니다. 그래서 물고기를 인간으로 바꿀 수도 있었지만, 동시에 자연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옵니다. 깊은 바닷속에서 인간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 포뇨는 엄청난 힘을 사용합니다. 그 힘이 펼쳐지는 광경은 <벼랑 위의 포뇨>의 하이라이트입니다. 폭우가 퍼붓고 해일이 일어나며, 마을이 전부 물에 잠깁니다. 모든 바다 생물들이 일제히 일어나고, 특히 돌고래들은 해수면을 뒤덮을 정도로 솟아나서 포뇨를 뭍으로 데려다 줄 발판이 됩니다.

인간이 된 포뇨에게 소스케는 문화를 가르쳐줍니다. 자기 집에 데려다주고, 자기 물건들을 보여주고, 어머니의 라면을 대접합니다. 포뇨는 소스케를 물에 잠긴 마을로 데리고 나갑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소스케와 함께 물 위를 가로지르며 여행합니다. 둘은 매우 즐거워하고, 갈 수록 가까워집니다. 인간과 물고기라는 차이, 육지와 바다의 차이는 둘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포뇨의 아버지도 둘의 사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점차 인정하고 맙니다.

포뇨의 아버지는 인간을 싫어했습니다.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자연의 소중함을 배운 소스케는 바다의 생물인 포뇨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소스케의 친절한 태도는 포뇨에게 사랑을 일깨워줬고, 두 아이의 순수한 사랑에는 인간과 자연의 대립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습니다. <벼랑 위의 포뇨>는 두 아이의 순수한 사랑이라는 은유를 이용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발한 영상미와 은유법을 이용해 주제의식은 전달했지만, 전체 각본의 완성도는 많이 떨어집니다. 포뇨를 비롯한 바다 세계의 인물들은 개성이 뚜렷하지만 육지 쪽의 인간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소스케는 어린아이다운 활발한 감정 표현이 거의 없습니다. 영화 안에서 온갖 굉장한 일이 벌어지는데 도통 놀라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폭풍우와 싸우고 있어도, 어머니가 난폭운전을 해도, 마을이 바다에 잠겨도, 심지어 낮에 구해준 물고기가 밤에 인간으로 변해 나타나도 말입니다. 이 세계에서는 물고기가 인간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 매우 흔한 일이라도 되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소스케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도 폭우 때문에 마을이 전부 침수됐는데 너무 태평합니다. 그리고 어린이 두 명이 작은 배를 타고 침수된 마을 위를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습니다.

<벼랑 위의 포뇨>가 지향하는 분위기를 모르겠습니다. 영상은 매우 격렬하고 파괴적인데, 각본은 평화롭고 낭만적입니다. 대재앙 속에서 평화롭게 노니는 사람들을 보면 두 가지 가정밖에 들지 않습니다. 이 영화 속의 사람들이 전부 미쳤든가, 아니면 이 영화 속 세계는 우리 세계와 가치관이 매우 다르다는 겁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영화에 몰입이 안 된다는 결론은 똑같습니다.